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동아일보 법조팀 기자들을 포함해 최소 11개 언론사의 기자 35명 이상을 대상으로 가입자 정보 등이 포함된 통신 자료를 확보해 수사에 활용한 사실이 15일 드러났다.
공수처는 올 8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 사회부 법조팀 소속 기자 3명을 상대로 6차례 이상, 채널A 법조팀 기자 4명과 정치부 기자 1명 등 5명을 대상으로 8차례 이상 각 이동통신사로부터 통신 자료를 제공받았다. 통신 자료에는 휴대전화 가입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공수처는 기자들의 통신 자료 수집에 대해 “주요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가입자 정보만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어떤 수사를 위해서인지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고발 사주 의혹 등을 수사하면서 손준성 검사를 포함한 관련자와 통화한 기자들의 통신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수처가 통신 자료를 확보한 동아일보 기자 중에는 고발 사주 관련자와 통화한 사실이 전혀 없는 법원 출입 기자까지 포함돼 있다.
공수처가 통신 자료를 조회한 언론사는 동아일보와 채널A를 비롯해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헤럴드경제, 연합뉴스, 뉴시스, TV조선, OBS, 아시아투데이 등 11곳이다.
공수처, 野담당 기자도 통신 조회… 법조계 “저인망식 과잉수사”
공수처 “검사 피의자 통화 확인위해… 이통사서 상대방 정보 제공받아” 실제론 관련없는 기자 정보도 수집… “기자 수십명 자료확보, 위법 소지” 법조계 “조회 내역 구체 공개해야”
“주요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었고, 피의자 중 기자들과 통화가 많거나, 많을 수밖에 없는 인사들이 포함돼 있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언론사 기자들의 가입자 정보 등 통신 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알려진 13일 공수처는 조회 경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고발 사주’ 의혹, 이성윤 서울고검장에 대한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 피의자인 현직 검사들의 통화 내역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통화 상대방인 기자들에 대한 가입자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의자로 입건된 검사들을 취재한 적이 없는 동아일보의 법원 담당 기자, 채널A의 정치부 기자에 대해 공수처가 통신 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수처의 해명이 더 논란을 낳고 있다.
○ ‘검사 취재와 무관한’ 법원, 야당 담당 기자 조회
공수처는 올 8∼10월 동아일보 사회부 법조팀 기자 3명에 대해 총 6차례, 채널A 법조팀 기자 4명과 정치부 기자 1명 등 5명을 대상으로 7차례 이동통신사로부터 통신 자료를 확보했다. 통신자료에는 휴대전화 가입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가입 해지일 등의 가입자 개인정보가 담겼다. 공수처 수사과가 올 8월 기자들에 대한 통신 자료를 요구했고, 수사2부와 수사3부가 올 10월 통신 자료를 조회했다,
공수처가 통신 자료를 확인한 대상 중에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을 출입하면서 재판 기사를 작성하던 기자도 포함돼 있었다. 국민의힘 관련 뉴스를 보도하던 정치부 야당팀 기자도 있었다.
이에 앞서 공수처는 “피의자의 통화 내역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확인했고, 통화 내역에는 통화 상대방의 전화번호만 적혀있을 뿐 가입자 이름 등 정보가 없어서 통신사를 통해 가입자 정보를 확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었던 검사들과 연락할 일이 없었던 기자들에 대한 정보까지 광범위하게 수집된 것이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판사와 검사,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인데 15일 현재 공수처는 최소 11개 언론사의 기자 35명 이상에 대해 통신 자료를 조회했다.
○ “공수처, 조회 내역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공수처는 “수사상 필요한 통화 내역 등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적법 절차에 따라 확보하고 있으며, 선별 보관 파기 등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면서도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구체적 사건 및 통화 내역 조회 피의자 등에 대해선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어떤 경위로 기자들의 개인정보를 확보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 수사 과정에서 손준성 검사 등의 통화 상대방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들의 통신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발 사주 의혹 수사 착수 전인 올 8월 동아일보 법조팀의 법원 담당 기자 등에 대한 통신 자료를 조회한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일각에선 공수처 보도에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을 상대로 보도 경위를 조사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과잉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범죄 혐의자와 통화 상대방이 지속적으로, 특정 패턴으로 연락을 했을 때 선별적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하는 것이 수사 기관의 상식”이라며 “기자 수십 명의 통신자료를 확보한 것은 헌법상 보장된 통신 비밀에 대한 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고위공직자의 범죄만 수사하는 공수처가 민간인인 통화 상대방 전체를 뒤져서 수사 대상자를 선별하는 ‘저인망식 접근’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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