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근’이 만든 땅 속 그물망 통해… 나무 한 그루, 수백 그루와 연결
광합성 못하는 나무에 탄소 전송, 포식자 등장 땐 화학물질로 경고
영화 ‘아바타’(2009년)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역대 1위 작품입니다. 아바타(avatar)는 지상 세계로 강림한 신의 육체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바타라’에서 유래했습니다.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메타버스라는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형체를 뜻하는 말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컴퓨터 게임 등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의 분신처럼 사용되는 그래픽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영화 속 생명의 중심 ‘홈트리’
서기 2154년 지구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거대 기업 RDA(Resource Development Administration)는 알파센타우리 쌍성계에 속하는 지구와 비슷한 외계 행성 판도라를 식민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대기에 독성이 있어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녀야 합니다. 이들은 원주민들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해 ‘나비’라는 원주민과 인간의 DNA을 섞어서 만든 아바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주인공 제이크는 해병대 출신으로 복무 중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RDA 과학자였던 형이 불의의 사고로 죽자 그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아바타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을 제의받습니다. 제이크는 6년에 걸친 우주여행으로 마침내 판도라에 도착합니다. 이 행성 원주민 나비족의 근거지 중앙에 있는 홈트리 밑에 가상의 금속 언옵타늄이 사방 200km에 걸쳐 매장되어 있는데 이 금속은 초전도체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영화 속에서는 1kg에 2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나옵니다.
홈트리는 높이 약 460m, 지름 30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입니다. 나비족이 거처로 삼는 곳으로 나비족은 죽은 후 이 나무 밑에 묻힙니다. 그리고 여신 에이와를 숭배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나비족들은 이 나무를 통해 과거와 생태계 전부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홈트리는 뿌리를 통해 나무와 땅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숲속에 사는 무수히 많은 동식물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한 새 아크란과 나비족이 꼬리 쪽을 연결하는 부분은 나비족이 자연과 교감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아바타는 자연과 교감하는 동양 철학 특히 도교의 무위자연설을 연상시킨다고 합니다.
○ “나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홈트리가 숲의 나무들과 교감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멀리사 코크가 지은 ‘말하는 나무(Forest Talk)’에서 미송과 자작나무가 숲에서 서로 대화를 한다는 사실을 1997년 실험을 통해 밝힌 사례를 소개합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산림생태학 교수 수잰 시마드는 미송, 자작나무, 미국 삼나무가 균과 뿌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지하 통신망을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균근균(mycorrhizal fungi)은 ‘균류(myco)’와 ‘뿌리(rhiza)’를 뜻하는 것으로 숙주인 식물에게 영양 물질과 물을 제공하고 식물로부터 탄수화물을 공급받는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균근은 균사라고 부르는 미세한 관상의 필라멘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균근이 만들어내는 그물망을 통해 나무 한 그루는 다른 식물들 그리고 수백 그루의 나무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사이버 공간에서 수많은 컴퓨터와 컴퓨터들이 연결하는 ‘월드 와이드 웹(www·world wide web)’에 비유하여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고 부릅니다.
시마드 교수는 자작나무에 비닐봉지를 씌운 후 방사성탄소-14를 주입하고 미송에도 비닐봉지를 씌우고 비방사성탄소-13을 주입했습니다. 그리고 미송 위로 그물막을 쳐서 광합성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얼마 후 자작나무에 방사능 측정기로 확인하니 방사성탄소-14를 흡수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어 미송에도 확인하니 방사성-14를 흡수한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미송에는 방사성탄소-14를 주입하지 않았는데도 반응을 한 것은 자작나무에서 이동한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삼나무에 동일한 실험을 했지만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작나무와 미송을 연결하는 균근망에 이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작나무는 햇빛이 많이 비치는 여름에 광합성이 활발하지만 미송은 활엽수 잎에 가려 광합성을 하지 못합니다. 반면 겨울에는 상황이 뒤바뀌어 낙엽이 지는 자작나무는 광합성을 하지 못하지만 항상 잎이 푸른 미송은 광합성을 하게 되어 여름에는 자작나무가 미송에게, 겨울에는 미송이 자작나무에게 탄소를 서로 주고받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후 후속 연구로 나무들끼리 질소, 인, 물 등도 함께 나누고 다른 나무들이 포식자와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전류와 화학물질도 보냅니다. 나무가 공격을 받으면 균근망으로 신호를 보내 다른 나무들이 불쾌한 화학물질을 내보내 자신을 보호하게 합니다. 그리고 죽은 나무들에게 있는 탄소를 균근망으로 살아 있는 나무에게 보내서 숲이 살아나도록 돕는 일도 합니다.
그런데 같은 균근망에 가장 많은 자원을 보내는 허브 역할을 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영화 속 홈트리 같은 나무입니다. 같은 네트워크에 있는 나무들은 자원을 서로 공유하기 때문에 한 나무를 벌목하면 이 네트워크는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벌목을 한 후 일렬로 나무를 심으면 넓고 복잡한 강한 균근망을 만들 수 없게 됩니다. 알면 알수록 식물의 세계는 신비롭습니다. 우리 역시 식물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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