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은폐·회유 시도 등의 2차 가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예람 공군 중사가 생전 남긴 메모가 처음 공개됐다.
17일 MBC ‘뉴스데스크’는 이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장모 중사에게 군법원이 징역 9년을 선고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날 법정에서 처음 공개된 이 중사의 메모 내용도 함께 보도했다.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당한 다음날 작성했다는 메모에는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 “내가 여군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남자였다면 선·후임으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피해자인 자신을 오히려 자책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내가) 왜 이런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뼛속부터 분노가 치민다”, “이 모든 질타와 비난은 가해자 몫인데, 왜 내가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지, 나는 사람들의 비난 어린 말들을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내용도 있었다. 신고하면 자신이 비난받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해당 메모는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본 지 290일 만인 지난 17일 군사법원에서 열린 가해자 장 중사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날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이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군인 등 강제추행치상 등)로 구속기소된 장 중사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죽음을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해도 추행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10월 8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장 중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한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장 중사가 이 중사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은 사과의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가법상 보복 협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 측은 재판부에 “가해자가 죽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게 협박으로 안 들리느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이날 이 중사 어머니는 실신해 구급차로 후송됐다. 유족 측 변호인은 “이미 국방부 수사심의위원회가 죄가 된다고 판단해 기소한 협박 혐의가 무죄로 나온 건 납득하기 어려운 만큼, 군 검사가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이던 장 중사는 지난 3월 초 후임 이 중사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이 중사에게 자신의 잘못을 무마해달라고 압박할 목적으로 “죽어버리겠다”며 자해 협박을 한 혐의도 받는다.
이 중사는 부대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상급자들이 장 중사와의 합의를 종용하고 회유하는 등 2차 가해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사는 사건 발생 두 달여 만인 지난 5월 15비행단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2차 가해가 이어지고, 부실 수사가 계속되자 결국 부대 이전 3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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