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아이에게 이익이 된다면 조부모, 손주를 자녀로 입양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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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딸이 낳은 아이 입양 첫 허가

아이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면 조부모가 손자녀를 자녀로 입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A 씨 부부가 “외손자를 아들로 입양하겠다”며 낸 입양 허가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을 23일 깨고, 사건을 울산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가정법원이 미성년자 입양 허가를 판단할 때는 입양이 아동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조부모가 손자녀에 대한 입양 허가를 청구하는 경우에도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면 입양을 허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단의 핵심은 입양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는 아동의 복리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그 근거 중 하나로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들었다. 1991년 비준돼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아동권리협약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때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입양 허가 청구를 낸 A 씨 부부의 딸 B 씨는 고등학생 때 아이를 임신해 아이의 아버지와 혼인신고를 한 후 아들을 출산했다. 얼마 뒤 남편과 이혼한 B 씨는 아들이 생후 7개월이 됐을 무렵 A 씨 부부에게 아들의 양육을 맡기고 집을 떠났다. 이후 B 씨의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가 다가오자 A 씨 부부는 “외손자가 우리를 부모로 알고 자라고 있고 아이와 친부모 사이에 교류가 없다”며 법원에 입양 허가를 청구했다. B 씨와 B 씨의 전남편도 이에 동의했다.

1, 2심 재판부는 A 씨의 청구를 받아들이면 가족 내부 질서나 정체성 혼란이 우려된다는 점 등을 들어 이를 기각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A 씨 부부가 외손자를 입양하면 외조부모가 부모가 되고 B 씨는 어머니이자 누나가 되는 등 가족 내부 질서와 친족 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된다”고 했다.

반면 대법원은 아동의 복리를 기준으로 A 씨 부부의 입양 허가 여부를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원심이 A 씨 부부의 입양이 손주에게 이익이 되는지 이익에 반하는지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고 입양을 불허한 잘못이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전통적인 가족공동체 질서의 관점에서 친족 관계를 변경하는 것이 혼란을 초래하거나 아이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하고 단정해서 조부모의 입양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민법이 부모나 부모 항렬 이상의 혈족(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혈족 입양을 금지하지 않는 점 △조선시대에도 혈족이나 외손자를 입양하는 경우가 있었던 점 △해외에서도 혈족의 입양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을 조부모 입양이 가능한 근거로 들었다. 다만 조부모 입양의 경우 다른 입양과 다른 특수성이 있는 만큼 가정법원이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 조부모의 실질적 의사와 입양 목적 등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13명의 전원합의체 구성원 중 조재연 민유숙 이동원 대법관 등 3명은 법률상 조부모 입양이 가능하고 입양 허가 판단에서 아동의 복리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점에서 다수 의견과 견해가 일치했다. 하지만 친부모가 생존하고 있는 경우 조부모의 입양에 대한 허가는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입양을 불허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조부모 손자녀 입양#아이의 복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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