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5년 후 공익제보라며 다니던 회사의 접대 내역이 기재된 매입대장을 몰래 빼낸 뒤 인터넷에 공개했다. 제보자는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 법원은 정당행위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도리어 벌금형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서울 영등포구에 사무실을 둔 B회사에서 경리 및 관리업무 담당 직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퇴사하고 난 뒤 “챙기지 못한 짐을 찾으러 간다”는 핑계로 B회사를 다시 방문했다.
이때 A씨는 아무도 없는 틈을 이용해 재직 시절 사용하던 컴퓨터를 켠 뒤 경리 관련 자료들이 저장돼 있던 폴더에서 회사의 접대 내역을 자신이 준비한 USB에 저장했다. 해당 폴더에는 회사가 지난 2009년 7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C회사 직원을 접대한 내역 등이 기재돼 있었다.
이후 A씨는 지난해 4월 C회사 사이트 ‘비리제보’란에 과거 자신이 빼 온 B회사의 접대 내역 등을 제보했다. 아울러 C회사 소속 담당 직원에게도 이메일을 통해 같은 자료를 발송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공익적 목적에서 회사의 불법행위를 신고했고, 위 매입대장 파일을 발송한 것이므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1단독 조양희 부장판사는 지난 9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정보통신망침해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조 판사는 과거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정당행위로 인정되려면 첫 번째로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두 번째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세 번째 보호법익과 침해법익의 법익 균형성, 네 번째 긴급성, 다섯 번째 그 행위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의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누설동기와 경위, 누설 상대방, 퇴사 시점으로부터 5년6개월 경과 후 제보한 점, 누설로 인한 결과 등을 볼 때 정당행위로서 요건이 갖춰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내부 비위 행위를 신고하는 자를 보호함으로써 공익신고의 활성화를 도모할 필요성이 크다고 하더라도 권한 없이 타인의 정보통신망에 침입해 타인의 정보나 비밀을 유출하는 행위를 형법상의 정당행위로 평가하는 데 매우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조 판사는 “피고인이 부패행위를 신고한 점, 범죄행위가 발견된 경우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피고인에게 벌금형 초과 전력이 없는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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