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이수빈씨는 2020년 1학기부로 모든 학기를 마쳤지만, 아직 졸업은 하지 않았다. 취업 준비를 하며 인턴 경험이라도 쌓고 싶은데 ‘재학생만 모집한다’는 공고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학생 신분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안정’도 한몫을 했다. 이번 학기까지 포함해 총 세 번 졸업 유예를 한 그는 다음 학기도 졸업 유예를 신청할 생각이다.
#2. 취직을 준비하던 A씨(26)는 1년 반의 유예기간 끝에 올해 초 취업에 성공했다. 그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구직 공고가 잘 안 뜨고, 그나마 치러 간 시험에서도 번번이 떨어졌던 A씨는 졸업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졸업을 하면 무직 상태에서 구직 기간이 마냥 길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취업 직후 A씨는 졸업을 신청했다.
고질적인 취업난에 코로나19 사태까지 덮치면서 취업시장 속 대학생들이 ‘졸업유예제’ 속에서 피난처를 찾고 있다.
29일 교육부에 따르면, 2020년 고등교육기관(대학) 졸업자 취업률은 65.1%로 집계됐다. 2011년 이후 최저치다.
교육부 관계자는 통계치에 대해 “2020년 2월 졸업한 학생들의 취업률이 이렇게 낮은 것은 코로나19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졸업자 취업률에서만 취업난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취업 준비를 위해 졸업을 유예하는 학사학위 취득유예생(졸업유예생)도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졸업유예생은 조사가 시작된 2019년 1만3443명에서 2020년 1만6963명, 2021년 1만9356명으로 늘었다. 매년 10~20% 정도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취업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졸업과 졸업유예 중 뭘 할지 고민이다’, ‘졸업을 하면 취업 과정에서 불이익이 있나’ 등 관련 질문들이 시기를 막론하고 쏟아진다.
졸업유예 제도는 학점 등 졸업에 필요한 요건을 갖춘 ‘수료’ 상태에서 졸업 시기만 연기해 학사 학위 취득을 유예하는 제도를 말한다.
2018년 개정된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학사학위 취득 유예 제도는 각 학교 학칙에 따르며 제도를 실시하는 학교는 졸업유예생에게 학점 이수 등 수강을 의무화해서는 안 된다.
이때 졸업유예 기간은 휴학기간을 포함해 재학연한으로 한정된다. 재학연한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6~8년이 보통이다.
대학생들은 주어진 졸업유예 기간을 대부분 취업 준비뿐만 아니라 자격증 시험, 대학원 입학 등에 활용하기도 한다.
마케팅 분야로 취직을 준비하는 박모씨는 “학교 시설을 이용하고 싶고 아직 신분이 학생이라는 안정감이 들어 조급함을 덜기 위해 2학기째 졸업을 유예한 채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와 올해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며 3학기 동안 졸업을 유예했던 오모씨는 “혹시라도 시험 결과가 안 좋을 경우 취업 등으로 길을 돌려야 하는데 졸업을 하면 공백 기간이 생겨 서류나 면접에서 이를 소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것 같았다”고 했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졸업유예 제도를 갖추지 않고 있는 대학에서도 최근 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칙상 졸업유예 제도가 없어 ‘수업연한 초과자 규정’ 등 우회로를 통해 졸업을 유예하는 대신 수업을 신청하고 최소 40만원의 등록금까지 납부해야 하는 서울대가 대표적이다.
이에 지난 8월 서울대 총학생회 교육환경개선협의회가 학생 10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8.9%가 졸업유예제도 도입을 요구했다.
다만, 이같이 졸업유예생이 매년 증가해 이들이 적체되는 문제에 대한 대책도 함께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취업이 어려운 상태에서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졸업유예생이 증가한 것으로 본다”며 “이런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풀려 졸업유예생이 증가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학교나 정부 당국의 지원이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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