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따뜻한 한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그렇다고 직업을 아는 것도 아니다. 매년 성탄절을 전후로 펼쳐온 선행에 그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만 추정할 뿐이다. 사람들은 이 선행의 주인공을 ‘얼굴 없는 천사’로 불렀다. 그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희망과 감동을 심어놓고 사라졌다.
29일 전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5분께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남성은 직원에게 “성산교회 오르막길 부근에 있는 트럭 적재함 위에 박스를 놓았다.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노송동주민센터 관계자는 “천사님에게 미처 감사의 뜻을 표현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장에 달려간 직원들은 5톤 트럭 적재함에서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상자에는 지폐 다발과 돼지저금통이 들어있었다.
또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시고 따뜻한 한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힌 메시지도 있었다.
올해 성금 금액은 총 7009만4960원. 구체적으로는 5만원권 1400장(7000만원). 500원 동전 106개(5만3000원), 100원 동전 391개(3만9100원), 50원 동전 38개(1900원), 10원짜리 동전 96개(960원)다.
기부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역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2000년 4월에 처음 시작됐다. 당시 중노2동사무소를 찾은 천사는 한 초등학생의 손을 빌려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놓고 조용히 사라졌다.
이듬해 12월26일에는 74만원의 성금이 익명으로 전달됐고, 2002년엔 5월5일 어린이날과 12월 두 차례나 저금통이 건네졌다. 액수도 커져, 2009년에는 무려 8000여만원의 성금을 놓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가 올해까지 22년간 23차례에 걸쳐 두고 간 성금만 총 8억872만8110원에 달한다.
시는 그 동안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으로 생활이 어려운 6158세대에 현금과 연탄, 쌀 등을 전달해왔으며, 노송동 저소득가정 초·중·고교 자녀 20명에게는 장학금도 수여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전주는 천사의 선행으로 인해 따뜻한 ‘천사의 도시’로 불려 ‘얼굴 없는 천사와 같이 익명으로 후원하는 천사 시민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들이 베푼 온정과 후원의 손길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 소식을 접하며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라고 감동을 전했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수 십년째 성금을 전하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다”며 “천사님의 따뜻한 마음을 이어받아 앞으로 소소하게라도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주민 한모씨는 “주민센터 직원들이 어디론가 황급히 뛰어나가길래 ’아! 천사가 오셨구나‘ 생각했다”며 “우리 동네 뿐만 아니라 전주시의 자랑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선물해 줘 감사한 마음”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한편, 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노송동주민센터 일대 도로를 ’얼굴 없는 천사도로‘로 조성하고 ’얼굴 없는 천사비‘를 세우기도 했다. 주민들도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 나눔행사를 펼치고 있다. 전주시는 100년 후 전주의 보물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미래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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