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투박하게 그려낸 일상의 평온함… ‘한국의 밀레’ 천재 화가 박수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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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두 여인’(1962년) 박수근 作
‘나무와 두 여인’(1962년) 박수근 作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 교외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농촌 풍경과 농민들의 삶을 그린 바르비종파가 싹텄습니다. 대표적인 화가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입니다. 그는 노르망디 지역 작은 농촌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부의 삶을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바르비종으로 이사 간 후에는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밀레의 대표작에는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1848년), ‘씨 뿌리는 사람’(1850년), ‘이삭 줍는 여인들’(1857년), ‘만종’(1859년) 등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독특한 정감과 우수에 찬 서정적 분위기가 배어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가 감돌기도 합니다.

서양에 밀레가 있다면 동양엔 박수근 화백(1914∼1965)이 있습니다. 그는 18세 때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데뷔한 이래 ‘우물가’(1954년), ‘빨래터’(1950년대), ‘모자’(1961년), ‘시장의 사람들’(1961년), ‘나무와 두 여인’(1962년), ‘농악’(1962년), ‘아기 보는 소녀’(1963년), ‘할아버지와 손자’(1964년), ‘공놀이하는 소녀들’(1965년)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박수근은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니 한 세기를 뛰어넘는 두 화가의 마음이 한곳에 있는 듯합니다. 박수근은 밀레처럼 농촌의 풍경과 주변의 일상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 살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면서 그림을 팔기도 했습니다.

서정미가 듬뿍 담긴 삶의 정취가 화강암같이 거친 질감 속에 독특하게 표현된 것이 그의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굵고 검은 윤곽선, 흰색 회갈색 황갈색 위주의 단조로운 색채, 명암과 원근을 배제한 독특한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농촌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선남선녀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그런 투박한 기법이 어울리는 듯합니다. 박수근의 그림은 두터운 질감을 지녀 그림 속 형태를 쉽게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오래된 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움직임과 감정이 매우 절제되어 있어 일상의 평온함이 느껴집니다.

밀레와 박수근이 시공간을 초월해 만났습니다.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는 ‘오마주 밀레, 오마주 박수근’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내년 2월까지 열리는 전시에서는 프랑스와 한국의 작가 19명의 작품 150여 점을 선보입니다.

파리 변방의 바르비종과 한반도의 정중앙 양구, 밀레와 박수근이 머물렀던 시간과 공간은 다릅니다. 하지만 두 천재 화가의 붓끝에서 표현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애환, 그리고 미적 영감은 다르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지친 세밑이 되니 우리의 소중한 일상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박수근#한국의 밀레#박수근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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