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극 시즌2〈4〉자사고-외고 존폐론
영재학교 졸업생 “특성화 교육 필요”
전직 교사 “보편 교육이 바람직”
#윤경원(26): 한국과학영재학교, KAIST 학·석사 졸업. 현재 스타트업 창업 준비 중. 영재학교 시절 경험이 창업을 꿈꾸는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특수목적고(특목고) 등을 통해 일찍 적성을 찾고 기르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믿음.
#송영호(63): 1988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 계성여고(현 계성고) 영어 교사로 재직. 현재는 고향 경기 안성에서 이장을 맡고 있음. 자사고 도입 이후 일반고 교육이 무너졌기 때문에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폐지해 일반고 교육을 되살려야 한다고 믿음.
2019년 11월 교육부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2025년 일괄 일반고로 전환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자사고, 외고 등은 특성화·다양화 교육을 지향하며 설립됐지만 고교 서열화 심화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전면 폐지가 결정됐다.
발표 후 2년이 지났지만 찬반양론이 여전한 가운데 입장이 정반대인 윤경원 씨와 송영호 씨가 29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 사옥에서 만났다. 경원 씨는 영재학교에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유니콘 기업’ 최고경영자를 꿈꾸는 청년이 됐다. 그는 “자사고, 외고를 유지해 각 분야 전문가를 일찍부터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호 씨는 27년간 한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는 “자사고 등이 다수 생긴 후 일반고 학생들은 마치 낙오자인 것처럼 됐다”며 “다양한 계층이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 “특성화 교육 위해 필요” vs “일반고에서도 가능”
▽경원=자사고, 외고가 폐지되면 학생 성향에 맞는 특성화 교육이 잘되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영재학교 3학년 때 수능과 내신 공부 대신 9개월 동안 ‘인간 동력 항공기’를 만들어 대회에 나갔어요. 사람이 페달을 밟아 하늘을 나는 비행기인데,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어요. 일반고였다면 못해 봤을 경험이었죠. ▽영호=경원 씨 같은 과학 인재를 위한 영재고나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는 폐지 대상이 아니에요. (정부 정책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시킨다는 것이죠.
▽경원=인문 계열도 특성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외고에서는 해외로 자주 학생들을 내보내거나 학교 안에서 번역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겠죠.
▽영호=일반고에서도 학점제 등을 도입해 적성과 진로에 맞는 교육을 하도록 제도가 정비되고 있어요.
▽경원=같은 관심사를 가진 학생 간 시너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영재고에 다닐 때 친구들끼리 물리학 문제를 놓고 기숙사에서 밤을 새워 토론했죠. 같은 진로를 꿈꾸는 학생들을 한 학교에 모아두면 훨씬 밀도 높은 교육을 할 수 있을 거예요.
○ “이점 분명” vs “일반고 황폐화”
▽경원=일반고에선 손흥민 같은 축구선수를 꿈꾸는 학생과 과학 분야 진출을 희망하는 제가 같은 교실에서 리코더 연주법을 배워야 해요. 이게 좋은 교육일까요? 빨리 진로를 찾은 사람은 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일찍 줘야 하는 게 아닐까요?
▽영호=고등학교 때까지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지를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죠. 자사고, 외고 도입 후 일반고 교실은 정말 황폐화됐거든요.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도 줄었고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자사고, 외고에 못 갔다는) 열패감을 느끼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경원=저도 자사고, 외고가 우수한 학생이 가는 학교로 인식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영호=문제는 지금 자사고, 외고 학사 과정을 보면 대학 입시를 위해 중요한 국영수를 집중 교육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라는 거예요. 일반고보다 입시에 유리하게 수업 시간표를 짜는 거죠. 그럼 일반고에 다니는 사람들은 불리해지잖아요. 그건 공정하지 않아요. ▽경원=맞아요. 원래 취지와 다르게 변질된 거죠. 하지만 취지에 맞지 않는 학교가 있다고 해서 모두 폐지해야 하는지는 의문이에요. 자사고, 외고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이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양질의 교육은 권리” vs “기득권 대물림될 것”
▽영호=자사고, 외고는 일반고에 비해 학비가 비싸잖아요.(2020년 기준 자사고 1인당 평균 학비는 연간 731만1677원) 교직에 있을 때 공부는 잘하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외고에 못 가고 일반고에 온 친구도 있었어요. ▽경원=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통해 지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모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려는 건 당연한 욕망이자 권리라고 생각해요.
▽영호=돈 써서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하려는 부모들을 어떻게 막겠어요. 다만 지금처럼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자사고, 외고는 폐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기득권 대물림을 막는)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겠지만요.
○ “입시에 매몰된 획일화 교육은 반대”
1시간 반 남짓한 토론에서 평행선을 달리던 두 사람은 고등학교에서 대학 입시만을 위해 획일화된 교육이 이뤄져선 안 된다는 것에 동의했다. 대입만이 목표인 교육이 지속되는 한 자사고, 외고 폐지만으로 교육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도 의견이 같았다.
▽경원=자사고, 외고가 ‘우수한 학교’를 만들자는 취지로 생긴 건 아니거든요. 특목고는 이름처럼 특수한 목적을 가진 학교가 돼야 해요. 학생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영호=맞아요. 저도 특성화 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보완하자는 거죠. 그런데 (자사고, 외고, 국제고라는) 큰 틀을 바꾸지 않으면서 보완하긴 어렵다고 봐요.
전문가 토론 관전평 “특성화-평등교육 절충할 새로운 틀 고민을”
“수월성 교육과 평등 교육의 가치관을 절충할 수 있는 교육정책이 필요합니다.”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육학과 교수(사진)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외국어고등학교(외고) 등 존폐론’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 송영호 씨, 윤경원 씨 등 시민 2명의 사전 인터뷰와 일대일 대화 텍스트를 분석한 뒤 이같이 말했다.
박 교수는 “교육의 목적이 개인의 역량 강화와 행복 추구인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가치를 익히도록 하는 것인지를 두고 의견 차이가 컸다”며 “송 씨처럼 공동체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영재들을 모아 개인 역량을 최대화하는 것보다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무형의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반 학생들의 자존감이나 학습 동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소수의 영재 대상 교육은 윤 씨의 말처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계층 간 갈등이 커지는 상황을 감안할 때 영재교육을 하더라도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역량을 함께 기를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우리 사회가 수월성 교육을 반드시 자사고나 특목고 등을 통해 해야 하는 것인지, 새로운 틀은 없는지에 관한 근본적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 참여 시민 어떻게 선정했나
이번 토론은 참여 의사를 밝힌 시민 12명에게 ‘자사고·외고 존폐’를 주제로 사전 전화 설문조사를 한 뒤 상반된 응답을 한 시민 한 쌍을 선정해 진행했다. 설문 항목은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육학과 교수의 조언을 토대로 마련했다. 토론 참여자들은 이달 2일과 9일 추가로 각각 1시간가량 진행한 대면 인터뷰에서 △교육의 목적 △공교육에 대한 신뢰 △수월성 교육기관의 필요성 등의 측면에서 상반되는 답변을 했다.
본보는 6일자 A4면 ‘극과 극이 만나다 시즌2’ 기사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찬반 의견을 보도했습니다. 본보는 인터뷰에 응한 박청담 씨가 하지 않은 말이 기사에 일부 포함됐으며, 인터뷰 대상자 선정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점을 확인했습니다. 본보는 이번 취재와 보도 과정을 다시 검증하고 문제점을 찾아내 바로잡겠습니다. 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확인 절차를 강화하겠습니다. 박 씨와 동아일보를 믿고 아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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