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게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꼭대기는 처음 와 봐요. 군 보안시설이었거든요.”
1일 오전 7시 해발 634m의 부산 해운대구 장산(萇山) 정상. 전우양 씨(85)는 표석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서는 감격에 겨운 듯 이렇게 말했다. 정상의 면적은 1500㎡ 정도인데, 일반인이 디딜 수 있는 곳은 640㎡ 정도다. 이곳에서는 발 아래에 빽빽하게 들어선 80층 높이의 빌딩 숲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날은 40km 떨어진 일본 대마도 능선도 보였다.
전 씨의 아들, 손자 등 가족과 함께 집은 해발 550m 지점의 장산마을에 산다. 그는 1963년 시작된 정부의 ‘장산개척단 사업’에 따라 이곳으로 이주한 1세대 주민이다. 초기에는 군인 10여 명이 살았다. 전 씨는 1967년 고향인 대전을 떠나 이곳에 온 뒤부터 민둥산 허리를 밭으로 일궈 고랭지 채소 등을 키우며 살아왔다.
하지만 산의 맨 꼭대기는 함부로 오를 수 없는 금단(禁斷)의 영역이었다. 전 씨는 “초기 이주민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다. 좀더 일찍 개방됐으면 그 분들도 이렇게 좋은 풍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부산 해운대구는 이날 새해 해돋이 행사와 함께 ‘장산 정산 개방 기념식’을 가졌다. 구청 관계자와 주민 등이 보안 서약서에 서명하고 이곳을 찾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방역을 감안에 인원을 50명 정도로 제한했다.
정상에 오른 뒤부터는 ‘범 내려온다’ 등의 국악공연이 흥을 돋웠고 동해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해운대구 우동의 한 주민은 “4000개가 넘는 대한민국 산들 중에 정상을 개방하지 못한 유일한 곳이 이곳이었다”며 “누구도 와보지 못한 곳에서 새해를 맞으니 올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산은 대개 6·25전쟁 뒤 통신시설이 설치되면서 70년 가까이 민간인 출입이 제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상에 일반인이 오른 것은 적어도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정진택 해운대문화원 사무국장은 “일제에 국권이 상실된 1910년부터 정상은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는 무선을 청취하는 군사시설로 쓰였다. 그 이전에는 장산 일대가 나무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돼 일반인이 드나들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후반 ‘단절된 공간을 시민 품으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이보다 40여 년 뒤인 2011년 해운대구 주민단체와 환경단체가 시민운동을 추진하면서부터다.
지난해 9월 장산이 ‘해운대구 구립공원’으로 지정돼 정상을 포함한 산 전체 관리권이 해운대구로 넘어오면서 정상 개방 움직임은 탄력을 받았다. 해운대구는 지난달 군사시설에 대한 보안을 더욱 철저하게 하는 시설물 설치 등을 조건으로 군과 장산정상 개방에 관한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
장산은 4월부터 제한 구역을 개방할 예정이다. 사업비 5억 원을 투입해 군 주요시설이 민간인에게 눈에 띄거나 촬영되지 못하게 가림 시설을 세우고, 정상부에 간이화장실과 안전펜스 등을 설치한다. 앞으로 6.25 전쟁 때 만들어진 정상부의 미군의 벙커시설은 허물지 않고 그대로 보존할 예정이다. 다만 군과 이동통신사의 통신시설이 아직 그대로 있어 이 공간은 접근이 금지된다.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은 “정상 개방을 시작으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장산국(萇山國)’에 대한 문헌도 더 발굴하겠다”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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