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화 [고양이 눈썹]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3일 11시 27분


동아일보 오피니언면에는 사진코너 ‘고양이 눈’이 매일 실립니다. 지면 제약으로 다 하지 못 했던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미지를 미학적으로 읽어 보는 ‘고양이 눈썹’ 입니다.
2021년 11월
2021년 11월


동아일보DB
동아일보DB

#1

경기 구리시 아차산 중턱엔 ‘큰 바위 얼굴’이 있습니다. 2007년 경 인근에서 드라마 ‘태왕사신기’를 촬영한 뒤 발견됐다고 알려진 바위죠. 주인공인 광개토대왕 얼굴이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땅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긴 바위 모양새지만, 사람 얼굴 비슷한 윤곽을 찾아냅니다. 두꺼비바위 거북바위 등 동물 모양 바위가 많은 이유도 비슷하겠지요?

NASA


#2


화성 표면의 사람 얼굴 지형. 1976년 최초의 화성 탐사선 바이킹 1호가 착륙 지점을 고르기 위해 표면을 찍다 우연히 발견된 곳입니다. 넓게 찍은 기록용 이미지에서까지도 기어이 사람 얼굴을 발견해 ‘외계인의 흔적인가?’라며 이야기 거리를 만듭니다.

#3

아끼는 물건을 ‘아이’라고 부르곤 하지요. 인격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물성을 생명체처럼 대하는 것은 버릇일까요, 본능일까요. 의인화(擬人化·characterization)는 인지부조화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이 ‘아이’가 내 옆에 있는 것을 그저 우연이라 넘기고 싶지 않죠.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라고 믿고 싶어집니다. 무생물 재화에도 사람 스토리를 부여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죠. 자동차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자가용을 폐차 처리하고는 “십수 년 지기 친구를 떠나보냈다”며 통곡하는 운전자들의 사연이 자주 보입니다. 마치 반려동물을 장례 치르듯이요.

‘취향 저격’ 상품이 쏟아지면서 물성에 감정을 공유하는 인간의 능력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친구들과 가까이 마주 앉아 대화하며 호르몬을 공유할 수 힘든 상황이니 더더욱.

의인화 습관은 악용되기도 합니다. 인과관계를 딱히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 벌어지면, 의인화 습관을 이용하는 설명이 생깁니다. 마치 ‘코로나는 하나님의 벌’이라는 주장처럼. 자연 현상을 굳이 인간사의 일로 해석해 혹세무민하는 것이죠.

2021년 11월 경기 성남시청 로비
2021년 11월 경기 성남시청 로비

삭막한 관공서 로비. 대형 공기청정기에 붙은 ‘건들지 마세요’ 때문에 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스마트폰에 웃는 입술 모양의 선을 그린 뒤 함께 사진을 찍어보네요. 귀여운 로봇 얼굴로 변신. 저 또한 이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기계라도 사람처럼 보여야 무섭지 않은 것이죠.

제조사 홈페이지
제조사 홈페이지


원래 이렇게 관공서 등에 덩그러니 있곤 하는 공기청정기입니다. 제조업체 디자이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의인화의 관점으로 보면 기괴하게 생기긴 했네요^^. 조달청에 납품되는지 공공기관에서 주로 보이는 제품입니다.

2019년 4월 서울 종로구 옥인동
2019년 4월 서울 종로구 옥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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