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0일 부산 홈플러스 연산점 5층 주차장에서 택시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해당 주차장에 방호울타리 같은 별도의 추락방지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대형마트 상당수가 법에서 규정한 추락방지시설을 따로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차장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2층 이상의 건축물식 주차장에는 △2t 차량이 시속 20km의 주행 속도로 정면충돌 때 견디는 강도의 구조물이나 △방호울타리(1.8m 간격으로 지지대가 있는 가드레일 또는 지름 10cm 이상의 파이프가 2m 이상 이어진 가드레일 등) 등의 추락방지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4일 동아일보가 연산점 주차장을 확인한 결과 각층 주차장에는 방호울타리 없이 벽만 세워져 있었다. 사고 당시 71세 남성이 몰던 택시는 빠른 속도로 돌진해 벽을 뚫고 20m 정도를 날아 왕복 7차로 도로로 추락했다. 유일한 추락방지 장치인 벽이 뚫리며 택시 추락을 막지 못한 것. 방호울타리가 있었다면 참사가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부산 연제구는 홈플러스 측이 방호울타리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 ‘주차장의 구조·설비 및 안전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과징금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연제구 관계자는 “현재 정밀진단을 벌이고 있는데 경찰의 교통사고 원인 조사 결과와 마트 측 의견을 종합해 과징금 부과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규정 위반으로 결론 날 경우 250만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문제는 홈플러스 연산점뿐만 아니라 국내 대형마트 상당수가 추락방지시설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연산점에서 2.5km 떨어진 부산의 다른 대형마트 2층 주차장에도 방호울타리가 없었다.
또 인천 연수구의 한 대형마트도 지상 주차장에 별도의 추락방지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마트는 4층 옥상주차장에 높이 1.5m, 두께 1m 정도의 콘크리트 벽이 있었는데 ‘추락의 위험성이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문만 붙어 있었다. 광주의 대형마트 5곳을 돌아본 결과 1곳에만 방호울타리 같은 추락방지시설이 설치돼 있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차량이 돌진해 마트 주차장 벽이 뚫리는 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2년 11월에는 부산진구의 한 대형마트 5층 주차장에서 승용차가 벽을 뚫고 돌진하다 멈춰서 공중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사고도 있었다.
대형마트들은 법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벽 안에 있는 철근도 법에 규정된 ‘강도 높은 구조물’이나 ‘추락방지시설’로 볼 수 있다”며 “구조안전진단업체의 점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대형마트 관계자도 “철근과 콘크리트로 돼 있는 마트 외벽 자체가 (주차장법) 기준을 충족하는 추락방지 구조물”이라며 “매년 합동 점검에서도 문제가 안 됐다”고 했다.
하지만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벽이 추락방지 구조물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벽이 굉장히 취약했던 탓에 사고 차량이 영화처럼 벽을 뚫고 멀리 떨어진 도로까지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이라며 “지상 2층 이상인 전국의 모든 주차장 벽 앞에는 방호울타리 같은 시설이 설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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