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 중이던 여성을 찾아가 그 가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이석준(25)이 확보한 피해자 집 주소는 구청 공무원으로부터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 이 개인정보 유출의 대가로 이 공무원이 받은 돈은 2만 원이었다.
○ 한 시간 만에 주소 넘어가
서울동부지검 사이버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성범)는 10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청 건설과 소속 공무원 A 씨(40)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또 A 씨가 유출한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흥신소 업자와 직원 1명도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텔레그램 ‘고액 알바 모집’ 광고 등을 통해 흥신소 업체를 알게 된 후 도로점용 과태료 부과를 위해 부여된 차적 조회 권한을 이용해 파악한 개인정보를 업체 측에 넘겼다.
2020년 1월부터 약 2년에 걸쳐 개인정보 1101건을 불법 조회해 제공했는데, 가족이 이석준에게 끔찍하게 살해된 여성의 개인정보도 그중 하나였다. A 씨는 2만 원에 흥신소 업자에게 주소를 넘겼는데 이후 흥신소 두 곳을 더 거친 후 50만 원을 낸 이석준에게 흘러갔다. 이석준이 의뢰 뒤 A 씨가 조회한 주소를 전달받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석준은 지난해 12월 10일 이를 활용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여성의 거주지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 빌라에 찾아갔고, 흉기로 여성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동생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흥신소 업체로부터 마치 월급처럼 정기적으로 개인정보 유출 대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넘겨준 개인정보 건수를 정산해 매달 200만∼300만 원, 총 3954만 원을 받았다.
○ 통제 시스템 부재가 흉악범죄로
개인정보 유출이 흉악범죄로 이어질 수 있지만 처벌은 약한 편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사람과 그 사실을 알고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A 씨의 경우 뇌물수수 혐의가 함께 적용돼 형이 가중될 수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이들을 가중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의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검찰에 따르면 A 씨가 소속된 수원시 권선구청에는 차적 조회 권한 남용을 방지할 시스템이 없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수사기관에서 개인정보를 조회할 때는 사유를 쓰게 돼 있는데, 해당 구청에선 그런 게 없었다. 또 조회 전후에 결재를 받는 절차도 없었다”고 했다. 권선구 관계자도 1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실제 이 같은 시스템이 없다고 인정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본보가 서울·경기 소재 구청 3곳에 전화로 확인한 결과 관련 업무 담당자가 아무런 제한 없이 개인정보를 조회할 수 있었고 부정 사용 여부를 점검하는 절차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검찰은 이석준 사건과 별개로 흥신소 업자들에게 개인정보를 판매한 다른 사건을 수사하다 지난해 12월 13일 A 씨를 붙잡았다. 이후 살인사건을 수사 중이던 송파경찰서가 이석준에게 피해자 집 주소를 넘긴 흥신소 관계자 B 씨(37)를 체포해 정보 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A 씨가 피해자의 주소를 최초로 제공했다는 사실을 검찰을 통해 확인하면서 개인정보 유출의 전모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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