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불안감을 호소하며 공사 중인 아파트를 모두 철거한 뒤 다시 시공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아파트는 분양 당시 광주 최고 분양가 단지로 입주 예정자들은 재산상 피해를 입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가 유례 없는 붕괴사고인만큼 철거 공사 자체가 위험한데다 철거에만 최소 1년 이상 걸려 입주자와 건설사 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 아파트 입주 예정자 모임 대표 A 씨는 13일 “1·2단지 8개 동을 모두 철거한 뒤 재시공하라고 요구하는 공문을 시공사와 시행사에 보낼 예정”이라며 “입주 예정 주민들이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이용섭 광주시장은 “붕괴 사고 현장은 전문가들과 철저히 점검해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전면 철거 후 재시공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건축법에 따르면 아파트 건축 허가권자는 공사 중지와 건축허가 취소 처분은 물론 건축물 해체 명령까지 내릴 수 있다. 사고 아파트 허가권자는 서구청이다.
광주시는 일단 화정아이파크 1, 2단지 10개동 전체에 대해 전문가 안전진단을 실시해 전면 철거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23층에서 39층까지 흘러내리듯 붕괴한 사고가 건물 하층부까지 영향을 미쳐 균혈과 변형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지 진단하는 게 관건이다. 일부 만 보강 공사를 해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해체 명령을 내릴 근거가 약해진다.
전면 철거가 결정돼도 철거 공사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고 원인 파악,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정밀 진단에만 최소 3~4개월이 걸릴 수 있다. 여기에 철거 기간도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 대형 건설사는 주로 재건축·재개발 단지에서 철거 공사를 진행한다. 이마저도 철거업체에 용역을 줬다. 이번처럼 공사 중인 초고층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철거해 본 경험이 사실상 없다. 대형 건설사 A사 관계자는 “사고 발생한 동만 철거해도 주변 멀쩡한 동까지 균열이 발생할 수 있어서 전문 기술이 필요한데 마땅한 업체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고가 발생한 201동은 2단지 다른 3개동과 모두 지하 주차장으로 연결돼 폭약으로 201동만 한 번에 무너뜨리기도 힘들다.
B건설사의 건축 감리 담당 임원은 “전면 철거를 하면 건물 강도와 도면을 검토해 맨 위에서 1개 층씩 해체해야 해 최소 1년 이상은 필요하다”며 “보통 1개 층을 올릴 때 10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재시공이 끝날 때까지 2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계약자들은 입주가 지연된 기간에 따라 보상받는다. 보상 규모는 계약자가 지급한 계약금과 중도금 등에 연체료율(업계 기준 18%)과 지체 기간(일 단위)을 고려해 산출한다. 사고 아파트 지체보상금은 가구 당 하루 평균 약 19만 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전면 철거가 결정돼 1·2단지 705채 전체 입주가 2년 이상 지연되면 현대산업개발이 부담해야 할 입주 지체 보상금은 1000억 원이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붕괴된 상층부만 철거하고 보강 공사를 한다면 입주 지연은 3~6개월 수준으로 최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입주 예정자들이 원하는 대로 전면 철거 결정이 내려지지 않거나 입주가 지나치게 지연될 경우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 통상 아파트는 입주가 3개월 이상 지연될 경우 계약 해지 사유로 본다. 이현성 법무법인 자연수 변호사는 “귀책 사유가 건설사에 있다고 판단된다면 계약금을 배액배상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2019년 분양 당시 3.3㎡ 당 분양가가 평균 1600만 원으로 광주에서 역대 최고가였지만 경쟁률이 최고 108대 1, 평균 67대 1이었을 정도로 인기였다. 30평대(전용 84㎡)의 경우 분양가는 최고 5억7600만 원, 계약금은 최고 5760만 원 수준이었다.
지자체와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안전점검에 나서는 등 아이파크 브랜드에 대한 불신도 확산되고 있다. 충북 청주시는 이날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 중인 가경아이파크 건설현장을 안전 점검했다. 서울 강남구와 강서구에서 아이파크 브랜드로 건설 중인 재건축 아파트 조합도 정밀 안전진단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산업개발은 사고 수습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붕괴 사고가 발생한 단지의 향후 조치는 실종자 수색이 끝난 뒤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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