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4∼8차로 횡단보도 이용해 불편
인근 부산시민공원 이용객의 10% 불과
지하보도-보행육교 설치도 지지부진
“시민공원과 연계해 공원 활성화해야”
13일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광장. 축구장 5곳을 합친 규모와 비슷한 3만470m²의 광장을 돌며 만난 시민은 어림잡아 70명뿐이었다. 광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잔디광장(1만757m²)은 시민이 드나들 수 없게 하얀 줄로 통제돼 더 휑해 보였다.
추운 날씨 때문이 아니다. 부산시에 따르면 지난해 이곳을 다녀간 이는 모두 63만6500명으로 하루 평균 1743명에 그친다. 550m 떨어진 부산시민공원의 방문객 수는 하루 평균 2만 명. 송상현광장 방문객이 시민공원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지난해 광장에서 열린 집회는 10월 20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 단 한 건. 2020년에도 유엔참전 70주년 기념대회 등 2건뿐이다. 광장이라 명명되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도록 만든 터’라는 사전적 의미가 무색해지고 잊힌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광장이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로 접근성이 꼽힌다. 시민공원은 900대의 차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을 확보했으나 송상현광장의 주차면 수는 24대에 불과하다. 이마저 무료 주차장으로 운영돼 장기간 주차된 차량이 적잖아 자가용으로 광장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중교통 이용 도보객이 부산진구 양정동과 전포동을 잇는 중앙대로 중앙광장으로 입장하려면 왕복 4∼8차로를 횡단보도로 건너야 한다. 6곳의 주요 지점마다 횡단보도가 설치됐으나 이날 건너려고 대기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부전지하상가 쪽 횡단보도서 만난 김모 씨(45)는 “시민공원과 송상현광장을 옮겨 다니며 운동하고 싶지만 횡단보도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 흐름이 끊긴다. 광장에 딱히 즐길거리도 없어 한 번 다녀간 이들은 굳이 다시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교통정체가 심한 이 지역 교통체계 개선과 시민 화합 및 문화 교류를 위한 열린 공간을 만들겠다며 1850억 원을 투입해 광장을 조성하고 2014년 6월 개장했다. 많은 시민이 어울려 문화행사나 집회를 여는 부산의 대표 광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1년 내내 휑한 ‘교통섬’으로 전락해버렸다.
개장 초기부터 불편한 접근성 탓에 시민이 찾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면서 시는 2017년 광장 활성화를 위한 장·단기 사업 대책을 내놨다. ‘얼음 없는 스케이트장 조성’ 등 다양한 정책이 발표된 가운데 핵심 사업은 접근성 개선이었다. 시는 부전지하상가∼송상현광장 110m를 잇는 지하보도와 시민공원과 광장을 도보로 잇는 보행육교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신호등에서 대기하지 않고 광장을 드나들 수 있다면 찾는 이가 늘 것이란 구상. 하지만 5년째 되도록 이 사업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더구나 부산시는 광장 활성화 사업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지하보도에 180억 원, 보행육교에 40억 원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돼 예산 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시 관계자는 “지하보도 등을 설치해달라는 요구가 없어 시급한 사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시민공원 주변에 3000채 이상 들어서는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데 아파트가 들어서고 주민 요구가 많아지면 사업 재개 등이 검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사람이 찾지 않는 광장을 조성해놓고 아무런 대책 추진에 나서지 않는 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광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시민 의견 수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송상현 동상도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고 광장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공간이 없이 주인공이 빠진 광장이 됐다”며 “시민공원과 연계해 광장을 활성화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주철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광장이 양정동과 서면을 도보로 막힘없이 잇는 허브가 될 수 있게 다시 설계부터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당장은 광장을 어떻게 살릴지 시민과 전문가 의견을 모으는 대토론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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