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우위, 상대적 우위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내가 더 뛰어나다고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고 비로소 행복감을 느끼는 정신승리.
비교 우위(comparative advantage)는 원래 국제무역 용어입니다. 타국에 비해 앞선 산업의 재화를 수출하고, 대신 열세인 것은 수입해 충당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개념. 그런데 이 단어를 생활 속 사람들 관계에도 흔히 쓰곤 합니다. 심리학 용어가 아닌데도 왜 자주 쓸까요. 짐작컨대, 비교하려는 속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비교는 행복의 최대 걸림돌”이란 말이 있듯 비교는 습관, 아니 본연의 습성일까요? 데칼코마니처럼 맞은편에 무언가를 둬 대칭 구조를 만들어 놔야 머릿속이 좀 안정감이 생기긴 합니다. ‘사람’을 생각하면 남-녀, 노-소를 같이 떠올린다던지, ‘정치’를 생각하고 있다면 여-야를 떠올리는 것처럼요. ‘세계’를 생각하면 꼭 동-서양이 같이 떠오르기 십상입니다. 문제는 공평하게 완전한 대칭으로 생각하기보다 한쪽을 선호하거나 우월하다고 여긴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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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관계는 본질적으로 권력 관계입니다. 상대적인 관계지요. 조직 위계처럼 공적인 서열 관계도 있지만, 공평한 친구 사이라도 미묘한 위계질서가 생기기도 합니다. 심지어 나이마저 권력이죠. 가족과 친척 사이에선 항렬이 계급이듯이. 수평 문화가 대세인 요즘까지도 여전히 서열주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이유 아닐까요. 서열은 무리지어 사는 동물의 본능이기도 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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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평등’은 이제 누구나 수긍하고 인정하는 공리(公理·axiom)입니다. 토를 달지 못합니다. 만약 “내가 신분으로 보나 인격으로 보나 당신들보다 위에 있다”고 공개석상에서 대놓고 말하는 분이 있다면 본인의 인격부터 의심받을 것입니다. 속으로야 할 수야 있겠지만, 비교우위적인 생각은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근대 이전엔 누구나 법 앞에서 동등하고, 공평한 선거권을 갖고 기회의 평등을 누리는 사회는 없었습니다. 서열과 계급에 따라 인격이 상하로 갈리고, ‘생사여탈권’까지 당연시 됐죠.
산업혁명과 함께 사회계약론 등 개인의 인격을 중시하는 생각이 퍼지면서 ‘평등’ 개념도 물감 번지듯 조금씩 번졌습니다. 20세기 초 잠시나마 파시즘 광풍이 불며 특정인종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퇴행적인 역사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지금은 전 인류가 인격적으로 모두 평등하다는 것은 공리가 됐습니다. 인류는 어느새 여기까지 왔습니다.
#P.S.
1) 일하는 조직이 수직 체계인 이유는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대외 상황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을 위해서입니다. 요즘은 업무 이외의 영역에선 민주적인 운영이 대세죠. ‘갑질’은 박물관에만 전시될 채비를 마쳤습니다.
2) 저 비둘기는 유기생명체이고 수명은 불과 몇 년입니다. 반면 돌은 영구적인 광물질. 애초에 비둘기와 돌조각은 대칭적인 비교대상이 아닌 것이죠. 그럼에도 비교 우위라는 장광설을 위한 소재로 활용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저에게 사진과 글 소재로 악용(?) 당한 비둘기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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