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국내 발생 2년]가장 약한 곳 지켜본… ‘코로나 목격자 3人’
강봉희 장례지도사協봉사단장
김정규 철거업체 대표
‘심리상담’ 최기홍 고려대 교수
《2020년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나온 지 2년이 흘렀다. 그 사이 누적 확진자는 70만 명을 넘었고 누적 사망자는 19일 기준으로 6500명에 육박한다. 도둑처럼 찾아온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가족을 앗아갔고, 삶의 터전을 무너뜨렸으며, 끝 모를 우울감을 퍼뜨렸다. 동아일보는 지난 2년 동안 이 아픔을 가까이서 지켜본 3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로 어머니는 중환자실, 딸은 숨져… 너무 가슴아팠던 장례”
지난해 12월 24일 경북 칠곡군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했다. 거동이 불편했던 고인의 수족 역할을 했던 아내도 코로나19 증상이 악화되면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코로나19는 평생 함께한 부부의 마지막 인사조차 가로막았다.
그나마 자녀들은 창문 너머로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강봉희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장(69)은 “칠곡군 요청을 받고 시신 수습에 나섰는데 가족들이 고인의 마지막을 못 보는 게 안타까워 일부러 방 창문을 열어놔 발코니에서 볼 수 있게 했다”고 돌이켰다. 자녀들은 강 단장의 배려를 무척 고마워했다.
강 단장은 “그나마 자택에서 사망해 가능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사망자 장례지침은 ‘선(先)화장 후(後)장례’를 원칙으로 한다. 병원에서 사망한 경우 의료진이 시신을 이중 팩으로 밀봉한 뒤 넘겨주기 때문에 강 단장도 고인의 얼굴을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사망자 대부분은 유족이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화장터로 옮겨진다.
강 단장은 그런 죽음을 바로 옆에서 마주해왔다. 그가 마지막을 지킨 코로나19 사망자만 33명. 11일 대구에서 만난 강 단장은 “코로나19 사망자의 시신을 대할 때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초기에는 코로나라면 경찰도 출동을 안 했다. 그래도 나 아니면 누가 할까 싶어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강 단장이 처음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수습한 것은 대구 집단감염 사태 때였다.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왔지만 감염 공포 탓에 어느 장의업체도 염습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대구시는 2004년부터 지역에서 무연고자와 기초생활수급자의 시신 염습 봉사를 해 온 강 단장에게 읍소했고, 강 단장이 나섰다.
강 단장이 시신을 수습하고도 감염되지 않는 걸 본 뒤 사설 장례지도사들도 차츰 코로나19 사망자 수습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 유족이 격리 중이거나 연고가 없는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주로 수습한다. 나머지 가족들의 격리가 해제될 때까지 유골을 보관하기도 한다.
11일 오후 4시 시립화장장인 대구 수성구 명복공원에 운구차량 한 대가 도착하자 강 단장이 “털고 가세요. 속에 있는 거 다 내려놓고, 좋은 곳 가세요”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화장한 시신은 코로나19로 숨진 37세 여성이었다. 지금까지 수습한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가장 젊다. 강 단장은 “젊은 사람이 이렇게 세상을 떠나면 특히 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망자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도 코로나19에 확진돼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기에 강 단장이 유족을 대신해 고인의 ‘마지막’을 챙겼다. 강 단장은 “망자의 마지막 존엄을 지킨다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면서 “고인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고 해도 그건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해 12월 17일 화장 전 장례를 먼저 치를 수 있도록 지침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족이 충분히 애도할 기회를 보장하면서 사망자 체액에 의한 감염 가능성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지침이 개정되진 않았다.
강 단장은 인터뷰를 마치기 전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며 “의료진들도 팩에 시신을 밀봉하기 전 사망자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담아 유족에게 전달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폐업 자영업자들, 손실보상금도 철거비로 써”
김정규 철거업체 대표 “일감 늘었지만 도저히 웃을수 없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씁쓸한 호황’을 누리는 이들이 있다. 폐업한 자영업자들의 가게 인테리어를 철거하는 업자들이다.
18일 경기 수원시 독서실 인테리어 철거 현장에서 만난 김정규 쌤인테리어철거 대표(54)는 “폐업이 급증하면서 철거 일감은 코로나19 전보다 두 배가량으로 늘었지만 철거 견적을 묻는 자영업자들의 서글픈 얼굴을 마주하면 도저히 웃을 수 없다”고 했다. 독서실 주인 이모 씨(48)는 2018년 직장을 그만두고 권리금 3000만 원에 독서실을 인수했다. 독서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 코로나19가 터졌다. 매달 200만∼300만 원의 적자가 났다.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자 이 씨는 지난해 12월 문을 닫았다. 남은 건 1억 원가량의 빚뿐이었다.
김 대표는 “최근에는 중심 상가 1층이 아니면 권리금 받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며 “반면 인건비와 폐기물 처리 비용은 40% 정도 늘었다. 돈이 없으면 폐업도 쉽지 않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은 철거 비용을 내기 위해 정부지원금을 고스란히 털어 넣기도 한다. 독서실 주인 이 씨도 정부에서 받은 손실보상금 800여만 원을 철거비로 냈다. 김 대표는 “매일 찾아와 철거 현장을 보면서 울던 중년 여성이 특히 기억난다”며 “보증금을 다만 얼마라도 돌려받도록 꼼꼼하게 철거하려고 한다. 월세가 밀려 받을 보증금도 없다는 술집 주인에게는 중고 집기를 최대한 비싸게 팔아 소액을 건네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확진자들, 주변에 피해 줬다는 죄책감에 큰 고통”
‘심리상담’ 최기홍 고려대 교수 “내향적 사람들 고립상태 많이 빠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무섭거나, 가족을 잃어 슬픈 상황에서 삶의 무게를 새삼 느끼며 힘들어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2020년 8월부터 코로나19 확진자와 자가 격리자 등을 대상으로 100여 회의 전화 심리상담을 진행해 온 최기홍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18일 이렇게 밝혔다.
경제적 취약계층에 더욱 가혹했던 코로나19는 심리적으로도 원래 취약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최 교수는 “한 60대 여성은 코로나19 확진 후 자녀와 손자들이 자신 때문에 격리됐다고 자책하며, 죄책감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19는 사람들 간 사회적 거리를 더욱 떨어뜨려 놨다”며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거나, 사회적관계망이 적은 동시에 내향적인 사람들이 고립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로 무기력증이나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은 크게 늘었다. 최 교수 연구팀이 2020년 5월부터 성인 남녀 1000명을 2개월마다 추적 조사한 결과 자살 위험 신호를 보인 비율이 지난해 한때 전체의 30%를 넘기도 했다. 최 교수는 “거리 두기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우울감을 느끼는 비율이 상당히 늘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축적된 우울감과 불안감의 여파는 최소 3, 4년은 이어질 것”이라며 “심리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기회가 공공서비스의 일환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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