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발생한 삼표산업 사고가 첫번째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됨에 따라 산업계와 법조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설 연휴에도 쉬지 못하는 노동자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인데다 수사와 법 적용 과정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불명확한 부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앞서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에 있는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석재 채취장)에서 토사가 무너져 내리는 매몰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삼표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데다 삼표산업은 상시 근로자 수가 약 930명으로 중대산업재해 대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산재예방 효과 더 커지나…불명확성 해소 계기로”
노동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이 산업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각종 조치를 마련하도록 강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예방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 시행과 동시에 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이같은 예방효과는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산업계를 중심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결점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법의 취지 자체가 산업재해로 인한 책임의 범위를 넓혀 안전·보건 확보 의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것이기에 무조건적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보다 법의 결점을 보완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최근 발생한 광주 아파트 신축 공사 붕괴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사고는 인명 피해를 발생시킬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를 크게 무너뜨린다”며 “사고가 나면 무조건 경영진이 처벌을 받을 것이란 분위기가 조성되는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예컨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 한 상태에서 근로자가 이를 무시한 경우 경영진에 쉽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원청기업 같은 경우도 하청업체에 책정하는 안전 관리 예산이 많지 않다”며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안전 비용은 회사가 더 잘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노동수사에 밝은 검찰 출신 변호사도 “현장 관리자 등만 조사했던 예전과 달리 이젠 사고가 났을 때 경영진이나 사업주에 대해 수사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와 의무이행과의 인과관계가 있어야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것으로 무조건적인 ‘무과실 책임’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우선 법률 전문가들이 지금이라도 법을 꼼꼼히 살펴 법규의 불명확성을 해소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선 산업재해는 고용노동부, 시민재해는 경찰이 1차 수사권을 갖는데, 오랜 기간 산업재해 수사의 전문성을 쌓아온 고용노동부에 비해 경찰은 올해부터 전문수사관을 배치하는 등 전문성이 다소 부족한 상태라 지적한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검찰은 수사지휘를 할 때 경찰에 고용노동부에서 중대재해를 조사해놓은 결과를 공유해서 사건을 송치하라 했었는데, 이제는 수사지휘를 할 수 없지 않냐”면서 “고용노동부, 경찰, 검찰 간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가 절실하다”고 충고했다.
◇법규 ‘불명확’·적용 대상 ‘광범위’…“위헌 소지” 지적도
법조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불명확성’과 적용 대상의 ‘광범위함’을 꼽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부작위범’ 다시 말해 ‘어떤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 및 법인에 대해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렇다면 ‘어떤 의무를 의행할지’를 법 규칙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해야하는데, 법에서 명시된 의무가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이다보니 기업으로선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우려다.
게다가 판례가 쌓이지 않은 법 시행 초기 단계에서는 사고 예방을 위해 각종 조치와 교육을 거쳤음에도 예측하지 못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반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이라 할지라도 운 좋게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기업들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 지켰다고 생각하더라도 법적 규칙으로 정해져있는게 아니니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처벌될 수도, 면책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고용노동부도 각 기업의 업종별, 상시 근로자 수가 다 다르니 모든 케이스에 대해 규정할 순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수사에 밝은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 역시 “적용 대상의 범위를 조금 축소하더라도 규정을 아주 명확하게, 단계적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다 포괄하기 위해 욕심을 크게 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법의 불명확성과 모호함은 중소기업에 치명타를 초래할 것이란 데 이견이 없다. 고용노동부는 50인 미만인 영세사업장의 법 적용일을 2024년 1월27일까지 유예했지만, 예산과 인력이 많은 대기업이 아닌 이상 수년이 걸릴지 모르는 수사와 재판을 겪는다면 최악의 경우 도산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대형 로펌 등의 도움을 받아 컨설팅을 거쳐 체계적인 준비를 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럴 여력이 없다”며 “구체적으로 뭘 준비해야할지 모호한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 등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에 대한 형사처벌뿐 아니라 징벌 배상까지 지도록 규정한 법 조항이 다소 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결국 엄하게 처벌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취지인데, 그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일 순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하청업체에서 난 사고를 원청업체에 지도록 한 규정은 형사처벌에서의 ‘자기책임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또한 산업현장의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영진을 처벌하는 논리는 결국 경영 악화로 인해 근로자의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풍선효과’를 초래한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보호해야할 것은 당연히 보호해야하지만 무리하면 항상 풍선효과가 나타나게 된다”며 “과도한 수단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나오기 전에 개정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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