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서 땅꺼짐 현상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앞서 지난 23일 서울의 한복판이라고 할 수 있는 종로구 종로5가역 인근 차도에서 가로 3m, 세로 2m, 깊이 1m 규모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같은 날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한 공사 현장 부근 인도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인도를 걷던 20대 여성 한 명이 이곳에 빠지면서 팔과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도심 속 땅꺼짐 현상은 최근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에 땅꺼짐 현상이 발생해 인근 주민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2019년에는 공사장에서 발생한 땅꺼짐에 노동자 1명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자칫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중대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시점이라 더욱 주목된다. 땅꺼짐이 도심 속 지뢰로 불릴 만큼 위험하다 보니 지금이라도 당국이 실태 파악을 포함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명피해 부른 부실한 공사와 과도한 개발
지난 2019년 여의도에서 일어난 공사 현장 땅꺼짐의 경우 최소한의 안전망과 안전 불감증이 부른 사고였다. 당시 사고가 발생한 곳 지하에 매립된 상수도관에서 누수가 있었고 누수에 의해 지반이 약해졌는데도 공사는 계속해서 진행됐다.
이번 강서구 마곡동의 사고도 원인을 더 조사해 봐야 하겠지만 땅 밑이 텅 빈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물길이 바뀌었고 이를 통해 토지가 유실됐다는 가정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도심 속 땅꺼짐 현상은 지하수의 흐름이 바뀌어 유실이 생기거나 공사 중 상하수관로 손상으로 누수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하수 흐름이 바뀌어 생기는 땅꺼짐의 경우, 전철, 도로, 상가, 주차장 등 대규모 시설을 지하에 조성할 때 많이 발생한다. 지하공간을 과도하게 개발하면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지하수의 자연적인 흐름이 바뀌게 지하에 빈 구멍이 생기는데, 지하수가 버티던 지반의 하중을 이 빈 구멍이 견디지 못해 땅꺼짐이 발생한다.
이 같은 사고는 연약한 지반에서 발생하는 땅꺼짐에 비해 사전 징후를 알기 어렵고, 침하가 급격히, 깊게 발생할 수 있어 위험도가 높다.
또 도심지 지하에 설치된 상하수관로에서 누수가 발생할 경우, 인위적인 지하수의 흐름이 발생해 지반이 침하될 수 있는데 이 역시 주택, 상가, 공장 등과 인접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 피해가 상당히 크다는 지적이다. 이번 종로5가에서 발생한 땅꺼짐 현상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통계로 드러나는 인재…위험 수위 낡은 상하수도관
정확한 원인은 일부 차이점이 있지만 전반적인 땅꺼짐 현상에서 인재가 작용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최근 5년간(2017~2021년 6월) ‘발생 원인별 지반침하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매설물 손상에 따른 땅꺼짐이 가장 많았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총 1176건의 지반침하가 발생했는데 매설물 손상 680건(하수관로 538건, 상수관로 97건, 기타매설물 45건), 다짐(되메우기) 불량 203건, 공사 부실 87건(굴착공사 41건, 상하수관공사 26건, 기타 매설공사 20건) 등의 순으로 많았다.
최근에는 매립지 조성을 통한 신도시 건설로 인한 땅꺼짐 현상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경기도에서 217건의 가장 많은 땅꺼짐이 발생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과적으로 되메우기 공사만 제대로 했거나 부주의하게 상수관로를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전체 사고의 절반은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울러 과도한 개발은 반드시 지반에 영향을 주는 만큼 사전 조사 혹은 규제가 좀 더 촘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낡은 상하수도관 교체도 시급한 과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노후도가 확인되지 않은 전국의 상하수도관만 총 4만5627km에 이른다. 또 설치된 지 40년 이상인 상하수도관은 8424km, 30∼40년인 상하수도관은 2만6350km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를 관리할 지자체 인력과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낡은 상하수도관을 서둘러 교체해야 하지만 당장의 눈앞의 일이 아니다 보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지하공간통합지도의 필요성…지하수 조사도 필수
국토교통부는 지하안전법 제42조에 따른 지하공간통합지도 등 지하공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있다. 지하공간 DB는 굴착공사 인·허가 및 안전성 평가, 재난·안전 관리, 지하시설물 개발·관리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지하공간통합지도는 지하안전법 제14조와 제20조에 따라 깊이 10m 이상 굴착공사 및 터널공사 등에 시행하는 지하안전영향평가의 기초자료로 활용되는 만큼 이를 이용해 지반침하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입법조사처의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부터 정부는 지하공간통합지도 구축에 4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일부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 지도를 조금 더 촘촘히 구축해 땅꺼짐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의 구축된 지도는 지반이 주를 이뤘다면, 중점관리대상 지정 및 고시 규정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관련 규정도 강화해 관리 대상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도 도심 노후 시설물 관리와 도로, 옹벽 등의 정보도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하수 관리는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하공간을 개발, 이용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지질 및 지하수에 대한 기초자료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지하수 기초조사는 1990년 시범사업으로부터 30년 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과 인력 부족 등으로 전국에 대한 조사를 아직도 완료하지 못하고 있다. 지하수 기초조사는 전국을 167개 지역으로 구분해 실시됐는데 지난해 말까지 151개 지역을 조사 완료하는데 그쳤다.
더욱이 장시간 조사가 이뤄지다 보니 조사 지역별로 시간차가 발생해 조사 자료의 갱신과 신뢰도 확인도 필요한 상황이다.
김진수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다수의 국가 주요 기반시설과 다중이용시설이 위치한 지하공간을 효율적으로 개발, 관리하고 지반침하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하공간통합지도, 지하수 기초조사 등 지하공간 기초자료를 우선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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