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뚫고 추락’ 택시 ‘사고기록장치’…정작 경찰은 분석장비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7일 14시 30분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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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량 급가속으로 인한 충돌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객관적 원인 규명을 위해 모든 차량에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부착을 의무화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는 EDR 장착이 의무화돼 있지 않은데다, 일부 차종에 설치된 EDR은 경찰도 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장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부산경찰청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대형마트 차량 추락사고’와 ‘전통시장 유모차 충돌사고’는 모두 차량 급가속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12월 30일 낮 12시 30분쯤 부산 연제구 연산동 홈플러스 5층 주차장에서 택시가 건물 밖 도로로 추락해 운행 중인 차량을 덮쳤다. 이 사고로 운전자가 숨지고 보행자 등 7명이 다쳤다.
지난해 12월 30일 낮 12시 30분쯤 부산 연제구 연산동 홈플러스 5층 주차장에서 택시가 건물 밖 도로로 추락해 운행 중인 차량을 덮쳤다. 이 사고로 운전자가 숨지고 보행자 등 7명이 다쳤다.


지난해 12월 30일 부산 홈플러스 연산점 5층 주차장에서 71세 남성이 몰던 택시(SM5 2018년식)가 90m를 돌진해 벽을 뚫고 왕복 7차선 도로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운전자가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앞서 22일에는 부산 수영팔도시장 입구에서 80대 남성이 몰던 차량(그랜저TG 2010년식)이 170m를 질주해 유모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유모차 안에 있던 18개월 여아와 할머니인 60대 여성이 숨졌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합동 조사 결과 대형마트에서 추락한 택시는 시속 70㎞, 유모차 충돌 차량은 시속 50㎞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됐다. 두 사고의 원인 규명의 핵심은 차량 급가속 때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여부다. 경찰은 조사 결과 두 차량의 운전자가 충돌 전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그러나 이 두 차량에는 경찰이 자체 분석할 수 있는 EDR이 장착되지 않은 상태였다. EDR은 사고 직전 차량의 속도, 가속페달이나 브레이크를 밟은 정도, 엔진회전수(RPM) 등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다. 가로세로 길이가 1㎝가 안 되는 칩 형태로, 통상 에어백 안에 내장된다.

지난해 12월 22일 부산 수영팔도시장 입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60대 할머니와 18개월 손녀가 사망한 가운데 사고 현장에 추모의 발걸음이 이어지던 모습.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지난해 12월 22일 부산 수영팔도시장 입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60대 할머니와 18개월 손녀가 사망한 가운데 사고 현장에 추모의 발걸음이 이어지던 모습.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2010년 생산된 팔도시장 사고 차량엔 EDR 자체가 없었다. 국내에서는 차량에 EDR 장착이 의무화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시행된 자동차관리법 29조 3(사고기록장치의 장착 및 정보제공)에 따라 EDR이 장착된 경우 기록을 공개하도록 규정했을 뿐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가 엔진을 분해해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식이었던 대형마트 추락 택시에는 EDR이 있었지만 정보 추출 장비를 경찰이 갖고 있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과 국과수가 보유한 EDR 기록 추출장비는 현대·기아차용과 일부 수입차 분석용인 CDR(Crash Data Retrieval) 두 종류뿐이다. 르노차 및 쌍용차 등 일부 차종의 사고기록 정보 추출장비는 일선 수사기관에 보급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르노삼성 관계자를 불러 국과수 입회하에 EDR을 분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브레이크 제동 여부 등 사고 원인을 더욱 객관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정부가 EDR 규격을 통일한 뒤 부착을 의무화하고 분석 장비를 경찰에 보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현재 보급된 EDR은 차량 충돌 후 에어백이 펴져야만 정보가 기록된다는 맹점이 있다”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정보가 기록되는 EDR 장착을 의무화 해 사고 발생 시 제조사의 시스템 결함인지, 운전자의 과실인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홍국 부산경찰청 교통조사계장은 “EDR 분석이 필요한 사고가 (관내에서) 1년에 50건 정도 발생하는데, 이 가운데 10~20%는 경찰의 자체 조사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통일된 사고기록장치가 부착된다면 수사가 더욱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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