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제동-엔진회전수 기록장치
급가속 추정 잇단 사고에도… 구형 아예 없고 제조사마다 제각각
경찰은 데이터 추출장비 못갖춰… 사고원인 규명에 상당 시간 걸려
전문가 “EDR 장착 의무화해야”
최근 급가속 차량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표준화된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부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관리법상 EDR 장착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구형 차량은 EDR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제조사별로도 EDR 형태가 제각각이다 보니 일부 차종에 설치된 EDR의 경우 경찰에 데이터 추출 장비가 없어 분석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 EDR 없어 엔진 분해해 조사
7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유모차 충돌사고’와 ‘차량 추락사고’는 둘 다 급가속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22일 부산 수영팔도시장 입구에서 80대 남성이 몰던 차량(2010년식 그랜저)이 시속 50km로 유모차를 들이받아 2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30일 부산 홈플러스 연산점 5층 주차장에서는 71세 남성이 몰던 택시(2018년식 SM5)가 시속 70km로 급가속하다가 벽을 뚫고 추락해 운전자가 숨지고 7명이 다쳤다.
경찰 조사 결과 두 사고 모두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사고 차량에 EDR가 없거나 EDR에서 경찰이 기록을 추출하지 못해 원인 규명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EDR는 차량의 속도, 브레이크를 밟은 정도, 엔진회전수(RPM) 등을 기록해 사고 원인 규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수영팔도시장 사고 차량에는 EDR 자체가 없었다. 자동차관리법은 EDR가 장착된 경우 기록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지만 EDR 장착이 의무는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원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엔진까지 분해해야 했다”며 “EDR가 있었다면 브레이크 제동 여부 등을 확인하는 데 몇 시간이면 충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연산점에서 추락한 택시는 EDR가 부착돼 있었지만 기록을 경찰이 직접 추출할 수 없었다. 경찰과 국과수가 보유한 EDR 기록 추출장비는 현대차·기아용(VCI)과 일부 수입차 분석용인 ‘CDR(Crash Data Retrieval)’ 등 두 종류뿐이었기 때문이다.
택시 제조사인 르노삼성이나 쌍용차, 테슬라 등 다른 차종의 추출장비는 경찰에 보급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르노삼성 관계자를 불러 EDR를 분석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 “표준화된 EDR 장착 의무화 필요”
이 때문에 정부가 EDR 규격을 표준화한 후 장착을 의무화하고, 분석 장비를 경찰에 보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홍국 부산경찰청 교통조사계장은 “EDR 분석이 필요한 사고가 (관내에서) 1년에 50건 정도 발생하는데, 10∼20%는 자체 조사가 어렵다”면서 “표준화된 EDR가 탑재된다면 수사가 더 객관적으로, 빨리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박요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하나의 EDR 정보 추출기로 모든 제조사의 EDR 데이터가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2015년경부터 출시한 신차에는 의무는 아니지만 대부분 에어백 컨트롤러 유닛(ACU) 등에 시간대별 사고 상황 등을 기록하고 있다”며 “ACU에 남아 있는 기록이 EDR 기록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국내는 EDR를 이미 적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차량이 에어백을 장착하고 있는 만큼 EDR에 준하는 장치를 달고 있다고 보고, 정부가 분석 장비를 보완하면 된다는 뜻이다.
EDR(Event Data Recorder 사고기록장치)
차량 충돌 전후 상황을 기록해 사고 정황 파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작동 여부는 물론이고 엔진 상태와 속도 등의 정보가 0.5~1초 단위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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