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면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을 주는데, 건축 공간 중에서는 돔 아래에서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유럽의 성당 돔 아래에서 느끼는 온화한 심리적 안정감은 오목하게 둥그런 천장이 나를 안아주듯 감싸기 때문이다.”
- 유현준(건축가)의 책 ‘공간의 미래’(2021)에서 발췌
#1
돔(Dome)은 기둥을 최소로 쓰면서 천장을 높고 넓게 만들기 위한 건축기법이었습니다. 신전이나 교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공간에 맞았죠. 그런데 그 둥근 천장 아래 있으면 ‘신이 나를 돌봐준다’는 엄숙하지만 포근한 느낌을 주며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해석입니다. 마치 누군가가 안아 주 듯이요.
#2
우리가 머무는 대부분의 공간은 직선과 평면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사무실 식당 학교와 아파트는 물론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도 그렇습니다. 일상의 공간은 거의 네모 평면으로 구성된 3차원입니다. 직선과 평면으로 주거 공간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겠죠. 최소 건축비로 가장 넓은 면적을 뽑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일상을 탈출하고자 할 때 곡선을 찾게 됩니다. 산길도 산책로도 구불구불하죠. 덜 지루하고 편안합니다. 곡선은 휴식의 느낌을 주니까요. 즉 둥근 공간은 안식과 연결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까요.
요즘 승용차는 실내 공간(cabin)이 둥글둥글합니다.
각진 차량이 많았던 SUV도 둥근 형태가 대세입니다. 좌석을 붙여 누우면 돔이나 동굴 기분이 납니다. 차박이 그래서 인기인가 봅니다. 제 지인은 근무 중 쉬고 싶을 때 회사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출퇴근 승용차로 갑니다. 잠시 머물다 보면 기운이 재충전된다고 하시네요. 이런 분들을 코쿤(Cocoon·누에고치)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고치도 둥글지요.
#3
우리나라에도 전통 돔이 있습니다. 바로 정자입니다. 산책 중 정자를 만나면 ‘문명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아 안도하게 됩니다. 원형에 가까운 8각에 벽면은 없고 둥근 기둥뿐이라 안에서 밖을 바라보기 쉬운 구조입니다. 평화롭죠. 천장을 올려다보면 비록 오목하지만 가운데가 봉긋 솟아 있어 돔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조상들은 직선의 누각(樓閣)으로 관아나 서원 등 유교적인 공간을 표현했고, 둥근 정자(亭子)는 도가적인 무위자연이나 유유자적인 장소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즉 쉼의 공간입니다.
캠퍼들에겐 몇 년 전부터 돔형 텐트가 대세입니다. 삼각 텐트나 사다리꼴 텐트는 요즘 캠핑장에서 보기 힘듭니다. 캠핑 사이트들이 4각이니 바닥은 네모라고 해도 천장은 둥근 모양이 많습니다. 둥근 천장이 제작하기 쉽다는 업체의 이익과 천고가 높아져 편리한 이용자들의 욕구가 맞닿아 인기를 끄는 것 같습니다.
휴대용 돔도 있습니다. 우산입니다. 쓰고 있으면 무언가로부터 보호를 받는 기분이 듭니다. 저도 어렸을 때 우산 3개를 바닥에 놓고 그 안에 숨어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경호원들은 우산을 ‘방패’로 활용하기도 하죠.
우산보다 더 편리하고 작은 초미니 돔도 있죠. 바로 후드티입니다. 겨울철 후드코트나 후드점퍼는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얇은 후드티는 여름에도 좋습니다. 우산처럼 비오는 날에만 쓸 필요도 없습니다. 언제든 숨을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공간이 생깁니다. 머리는 물론 얼굴의 옆면까지 가려주니까요.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엔 마스크에 후드까지 뒤집어쓰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됩니다. 선글라스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시의 특징 중 하나는 익명성인데요, 이 익명성을 완전히 보장 받는 자유를 누리며 도시의 거리를 활보할 수 있습니다. 감시와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를 완전히 만끽하는 것입니다. 나를 숨긴 상태에서 다른 보행자는 관찰할 수 있으니 우월적인 지위에 있다는 정신승리도 누릴 수 있습니다. 휴대용 은신처이자 망루인 셈이죠.
모든 돔이 평안과 안식, 은신처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 건축물은 권위를 뽐내기 위해 돔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저 아래 돔엔 아무리 있어도 절대로 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