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이나 블루베리 수확 체험도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만수국 씨앗으로 꽃을 피우고, 다육식물을 직접 기르다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정돈되는 힐링을 느낄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난달 말 2급 치유농업사 합격 통지를 받은 김재웅 씨(62·제주시 한경면)는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교육공무원을 퇴직한 후 감귤농장에서 제2의 인생을 맞고 있다”며 “치유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가정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의 정서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치유농업사에 응시했다”고 말했다.
2급 치유농업사는 올해 처음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국가자격시험으로 전국 11곳의 치유농업사 양성과정을 수료한 뒤 1차 객관식 시험, 2차 단답형 및 논술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전국에서 400여 명이 응시해 95명이 합격했으며 이 가운데 제주 지역에서는 4명이 자격증을 획득했다. 1급 치유농업사는 또 다른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추후에 배출될 계획이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조성 예정인 치유농업센터나 치유농장에서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하게 된다.
치유농업은 아직 체계적인 과정과 시설을 갖추지 못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텃밭을 가꾸고, 동물과 교감하고, 숲길을 걷는 등의 프로그램이 치유농업에 해당하는데, 일회성 농사체험이나 수확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2회 이상 반복적인 참여를 통한 심신 회복, 재활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농사가 목적이 아니라 건강 회복, 증진을 위해 농업을 활용하는 것이다.
치유농업의 효과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2020년 경증 치매노인을 대상으로 주 1, 2회에 10주 동안 원예활동을 실시한 결과 객관적 인지기능이 높아지고 기억장애 문제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암 환자, 65세 이상 노인, 고혈압과 당뇨 등의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식물매개 치유농업 프로그램에서도 스트레스, 우울감 등이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정서적 안정감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치유농업에 대한 관심은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네덜란드는 1999년 국가지원센터를 통해 치유농업을 시작했으며 독일은 1980년대부터 치유농업의 하나인 원예치료가 활성화됐다. 영국, 노르웨이, 벨기에 등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책적으로 치유농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2020년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을 거쳐 지난해 3월 시행됐다. 이 법에 따라 치유농업사를 선발했으며 5년 단위의 치유농업종합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이처럼 치유농업이 농촌 융·복합 프로그램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제주 지역에서도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제주도농업기술원은 올해 5억 원, 내년 5억 원 등 1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제주도 치유농업센터’ 구축에 나섰다. 이 센터에서 치유농업사 등이 치유프로그램을 만들고, 치유농장을 지원한다.
이와 별도로 올해 2억3040만 원을 투입해 치유농장 8곳을 조성한다. 이 농장에서는 지역 경관, 특산물 등과 연계한 제주형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의료시설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참여자의 치유효과를 측정한다.
허종민 제주도농업기술원장은 “치유농업은 건강한 사회를 실현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제주 농촌에 활력을 줄 수 있다”며 “농업자원을 다양한 경관자원, 숲길 등과 연계해 심신의 안정과 휴식을 제공하는 제주형 치유농업이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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