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성 A씨는 설 연휴 직후인 2020년 1월29일 연인 B씨(45)와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식을 따로 올리지는 않았지만 알콩달콩한 신혼생활을 꿈꿨던 그다.
B씨와 동거생활 중이던 2019년 9월 병과 유리잔 등 위험한 물건으로 B씨에게 얻어맞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A씨는 B씨를 믿고 이번 한 번만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B씨는 A씨와 혼인신고를 한 지 1년도 채 안 돼 물건을 부수고 집을 나가는 등 또다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때 B씨는 ‘외박을 하지 않는다’, ‘폭력·폭언을 하지 않는다’, ‘혼인 유지를 위해 변화하고 노력한다’ 등의 내용이 담긴 각서까지 써 가며 A씨를 달랬다.
사달은 2020년 12월에 벌어졌다. B씨가 난임치료를 받고 있는 A씨를 돕기는커녕 배를 타고 타 지역에 다녀오겠다고 나서면서 말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화가 난 B씨는 A씨를 흠씬 두드려 패다가 A씨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게 쇠망치로 A씨의 휴대전화 2대를 부순 뒤 A씨의 손과 다리를 때리는가 하면, 부엌에 있던 흉기들을 A씨의 목에 겨누면서 살해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후 특수상해, 특수재물손괴, 특수협박, 폭행치상 혐의로 기소된 B씨는 제주지방법원 형사1단독(당시 심병직 부장판사)으로부터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1년간 보호 관찰을 받을 것과 80시간의 사회 봉사를 명 받았다.
범행의 죄질이 좋지 않지만 B씨가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점, B씨가 초범인 점, A씨가 B씨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이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다.
사실상 A씨의 선처로 풀려나게 됐음에도 B씨는 집행유예 기간이자 석방 38일 만인 2021년 11월4일 끝끝내 사고를 쳤다.
A씨가 자신의 늦은 귀가 등을 타박하자 화가 나 부엌에 있던 흉기를 A씨의 목에 겨누면서 A씨를 위협하던 중 현관까지 피신한 A씨가 현관문을 열고 “살려주세요”라고 외치자 흉기로 A씨를 살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후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는 지난 17일 제주지법 제2형사부(당시 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로부터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25년 보다 10년이나 낮은 형량이었다.
이번에는 B씨가 잘못을 뉘우치는 태도를 보이는 점, A씨와 다투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이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다.
A씨의 유족은 억울함에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다. A씨가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겨 온 탓에 이제서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탓이다.
실제 A씨는 그간 B씨 가족에게만 사건 내용을 알려 왔다. A씨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면 ‘저도 이제 지쳤다’, ‘저도 저희 집에서 귀한 딸이다’, ‘우울증에 자살 시도도 했다’, ‘다정했던 사람이 괴물이 됐다’ 등 상당한 괴로움이 묻어 있다.
A씨의 유족은 B씨가 선고공판 다음날인 지난 18일 형량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 이유로 곧장 항소한 데 대해서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유족은 “B씨나 B씨 가족으로부터 단 한 번도 연락받은 적이 없는데 재판부는 어떻게 B씨가 뉘우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느냐”면서 “B씨 역시 법정에서는 죄송하다고 해 놓고 어떻게 형량을 더 줄여 달라고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이 유족은 이어 “아이라도 갖고 싶어 B씨를 한 번 더 믿어 보자는 기대감 반, B씨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뒤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반에 B씨를 선처해 줬던 것 아니겠느냐”면서 “가족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똑똑하게 조언해 줬던 아이인데 정작 본인은 더 심한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며 오열했다.
검찰은 이 같은 유족 의견 등을 고려해 23일 제주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A씨의 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는 이유다.
A씨의 유족은 항소심 재판부를 향해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A가 지금의 형량을 보고 억울함을 풀 수 있겠느냐”며 “B씨에게 법으로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형량을 내려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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