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가 3500만 원인 현대차 그랜저 자동차세는 87만 원이다. 그런데 가격이 억대인 포르셰 파나메라는 자동차세가 75만 원에 불과하다. 판매가가 그랜저의 두 배 정도 수준인 모델의 독일산 BMW와 벤츠의 자동차세는 이보다 훨씬 적다. 해마다 국산차 소유자들 사이에 “우리만 봉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조세 형평성에 맞느냐는 것이다.
국산차가 세금 역차별을 받는 것은 수입차보다 배기량이 더 크기 때문이다. 현행 자동차세는 차 값에 관계없이 엔진 배기량을 세 구간으로 나눠 클수록 누진적으로 많이 내는 구조다. 배기량 자체가 없는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는 일률적으로 10만 원이다. 억대의 테슬라 모델X도 지방교육세를 합쳐 연간 13만 원만 내면 된다.
우리나라 자동차세에 배기량 개념이 처음 도입된 것은 55년 전이었다. 배기량이 크면 힘과 속도가 좋고, 기름도 더 많이 쓰니 세금도 더 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당시만 해도 배기량이 클수록 차 값도 비싸니 문제될 게 없었다. 세월이 지나 국산차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게 된 것은 기술 진보 때문이다. 비싼 수입차들이 작은 엔진으로 주행 성능은 높이면서도 배기량을 줄였다. 옛날에 만든 조세 제도와 새로운 현실 간에 괴리가 생긴 셈이다.
배기량 기준이 처음 도마에 올랐던 것은 15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때였는데 지금과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미국은 한국의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가 엔진 사이즈가 큰 자국산 자동차 구입을 ㉠저해한다며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밀고 당기기 협상 끝에 배기량에 따라 5단계로 나뉜 자동차세를 현행 3단계로 간소화해 누진성을 다소 완화했다. 미국은 ‘한국이 차종 간 세율 차이를 늘리기 위해 배기량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할 수 없다’는 내용까지 합의문에 담았다.
당시만 해도 배기량 기준이 국산차에 대한 역차별 요인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국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늘면서 논란이 확산됐고 그동안 몇 차례 개편 시도가 있었지만 결실은 없었다. 예컨대 차 값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면 중소형차가 많은 소도시의 세수가 감소하게 되는 등 이해 조율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과 시장 변화에 맞는 세제 개편을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다. 차량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미국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조세 기준의 하나로 삼는 유럽 사례를 두루 참조해 역차별을 해소하면서도 미래 자동차산업을 성장시킬 해법을 찾아야 한다.
동아일보 2월 18일 자 배극인 논설위원 칼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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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차량 A가 차량 B보다 1000만 원 비싸더라도 배기량에 따라 A의 자동차세가 B보다 낮을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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