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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2년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혼란을 악용한 ‘코로나19 금융사기’가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값이 된 방역용품을 공급하겠다며 대금만 받고 사라지는 ‘탕치기’(돈을 선불로 받은 뒤 갚거나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하지 않고 도망감) 범죄가 일어나는가 하면 역학조사관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가로챈 뒤 돈을 빼돌리는 보이스피싱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방역 정책의 혼란을 틈타 피해자들에게 접근하는 등 사기 수법도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범죄는 공통적으로 현금 전달, 계좌이체를 요구하거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를 가장 의심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 빈발하는 지원금 빙자 보이스피싱… 질병관리청 역학조사관 사칭도
“코로나19 확진자가 가게에 방문해 방역지원금 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자영업자 A 씨는 지난달 17일 이 같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질병관리청 역학조사관이라고 소개하면서 “운영하시는 가게에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던 찰나. 사기범은 “방역지원금 대상자로 선정되셔서 지원금을 지급하려고 하니 신분증과 신용카드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보내 달라”고 했다.
‘손님이 끊기면 어쩌나’하는 근심이 일던 차에 지원금을 준다고 하자 A 씨는 선뜻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찍어 전송했다. 또 전화 도중 상대방이 질병관리청 사이트라며 보내 온 인터넷 주소를 눌렀다.
뒤늦게 알게 됐지만 역학조사관이라던 사람은 사기범이었고, 인터넷 주소는 가짜였다. 주소를 누름과 동시에 악성 애플리케이션이 A 씨 스마트폰에 설치됐다. 사기범은 이 앱을 통해 A 씨가 휴대전화 앨범에 보관 중이던 통장 사진을 빼돌렸다. 은행 계좌번호를 확보한 것이다.
사기범은 A 씨 명의로 해외 송금 서비스에 가입한 뒤 ‘마지막 퍼즐’만을 남겨뒀다. 돈을 빼돌리기 위해 휴대전화 인증이 필요했던 것. 사기범은 A 씨에게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올 텐데 인증번호만 누르면 방역지원금이 지급된다”고 했다. A 씨가 사기범의 지시대로 인증번호를 누른 순간 A 씨 계좌에서 약 300만 원이 사기범의 수중으로 빠져나갔다.
● 소상공인 노린 피싱 극성
최근 방역지원금 추가 지급이 발표되면서 소상공인을 노리는 보이스피싱도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식당과 빵집을 운영 중인 이모 씨(37)는 최근 ‘민생경제 지원방안 긴급 재난지원금 신청 대상자’라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지원금이 여러 차례 지급되면서 악용되는 ‘단골 보이스피싱 문구’다. 그러나 이 씨는 하마터면 사기에 넘어갈 뻔 했다. 이 씨는 “피싱 메시지에 혹해 내 번호를 문자로 보냈는데, ‘선착순 지원’이라는 문구가 영 마음에 걸렸다”면서 “범죄임을 직감하고 해당 번호를 차단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원금을 미끼로 보이스피싱을 시도하는 문자 메시지들은 공통적으로 ‘정부 지원’을 앞세우며 △국민생활 안정자금 △긴급 재난지원금 △특별금융 지원금 등을 명시하는 경향이 있다. 선착순 마감임을 강조하거나 신청 기한을 못 박으면서 ‘늦으면 지원금을 놓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전화 통화를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
● 품귀 현상 자가검사키트 “싸게 주겠다” 사기
정부가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의 온라인 신규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힌 다음날인 지난달 14일. 유통업체에 근무 중인 B 씨는 자가검사키트를 대량으로 구매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제조업체를 검색한 뒤 홈페이지에 등재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장모 씨는 해당 업체의 ‘영업 총괄본부장’이라고 소개했다. 당시는 자가검사키트 대란이 예상되던 상황. B 씨는 이것저것 따질 겨를 없이 키트 3만 개를 구매하기로 결정했고, 장 씨가 일러준 계좌번호로 총 구매금액의 50%인 7700만 원을 입금했다.
입금은 했지만 뭔가 미심쩍었다. B 씨는 “(자가검사키트) 대란인데 너무 쉽게 많은 물량을 줄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 이상했다”고 했다. 이에 B 씨가 환불을 요구하자 장 씨는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경찰 조사 결과 B 씨는 전화번호 착신 전환을 이용한 사기에 당한 것이었다. 범행 전 사기범이 한국전력 직원을 사칭해 자가검사키트 제조업체에 연락한 뒤 “전기 공사로 전화나 통신이 두절될 수 있다”며 “당분간 070으로 시작하는 특정 번호로 착신을 전환하라”고 유도했던 것. 사기범들에게 속아 넘어간 이 업체는 그대로 착신 전환을 했다. 이후 걸려온 주문 전화는 장 씨가 모두 가로챈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선불금을 떼먹는 ‘탕치기’와 보이스피싱이 결합된 사기 범죄다.
대전 유성경찰서 외에도 추가 두 건의 유사 피해 사례가 전국 다른 경찰서에 접수됐다. 모두 같은 업체의 홈페이지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가 피해를 당했다. 현재까지 파악한 피해 금액은 총 1억 원 수준. 경찰은 모두 같은 사기 조직의 소행으로 보고 일당을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은 대부분 해외에 거점을 두고 정부나 기관을 사칭해 개인을 속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번처럼 본인 신분을 사칭해 기업을 통째로 속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자가검사키트가 품귀현상을 빚는 가운데 유통업자의 급박한 심리를 악용한 범죄”라고 설명했다.
● “정부 지시로 특별 공급합니다” 사기 시도도
특정 기업을 사칭해 약국에 자가검사키트를 공급하겠다고 하고 대금을 빼돌리는 사기 사건도 일어날 뻔 했다.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 일대 일부 약국에 ‘자가검사키트를 특별 공급한다’는 공문이 팩스로 전달됐다. 공문에는 한 업체가 보건복지부 지시로 자가진단 키트를 평소 공급 가격의 절반에 특별 공급한다고 적혀 있었으며, 빠른 시일 내에 이를 신청하라는 당부도 담겨 있었다.
몇몇 약사들이 공문을 보낸 업체에 전화하자 업체 측은 “공문을 보낸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문의 전화가 100통 이상 폭주했다. 결국 이 업체는 대한약사회를 통해 “자가검사키트 특별 공급 관련 공문을 보낸 적 없다”고 공지해야 했다.
대한약사회는 이 사건을 사기 시도로 의심하고 있다. 업체 직원을 사칭한 사기범들이 약국을 방문한 뒤 ‘키트 특별 공급 대금’을 받으러 왔다면서 현금을 가로채 잠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다행히 피해 사례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업체 측은 사문서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고, 경찰이 사기범 일당을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2020년 초 마스크 대란 때도 허가를 받지 않은 마스크를 속여 약국에 판매하거나 대금만 받아 챙긴 일당들이 적발됐다”고 했다.
● “의심과 주의가 피해 예방의 최선”
경찰은 팬데믹이 지속되면 소상공인, 자영업자, 취약계층의 돈을 빼돌리는 이 같은 ‘코로나19 사기’도 이어질 소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절박한 시민들이 지원금 등을 미끼로 내건 사기범에 현혹되기 쉬운 탓이다. 뿐만 아니라 마스크 대란, 자가검사키트 대란 등 방역 물품이 품귀 현상을 빚을 때에도 이를 급하게 구하려는 이들이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결국 개개인이 범죄 수법을 알아두고 더욱 주의해 사기에 걸려들지 않는 수밖에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금융 사기범이 타인을 사칭하든, 악성 앱 설치를 요구하든, 부탁을 하든 최종적으로는 현금 전달, 계좌이체,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행위로 귀결된다”고 강조했다.
자가검사키트 사기를 수사 중인 대전 유성경찰서 관계자는 “지금은 검사키트 가격이 안정화됐지만 공급이 달리거나 수요가 넘치는 상황이 오면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다”면서 “공식 유통 체계를 벗어나 통상적 단가보다 터무니없이 싸게 판매를 제안하거나 솔깃할 만한 제안을 하는 곳은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온라인, 비대면 거래가 일상화됐지만 거액의 계약을 체결할 때는 전화뿐 아니라 직접 당사자와 만나거나 현장을 방문하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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