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벼랑끝 내모는 ‘셀프방역’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3일 03시 00분


코로나 재택치료 중심 재편됐지만, 사회적 약자 배려하는 정책 없어
도울 사람 없어도 자가 격리 통보… 검사 힘들고 시각장애인은 불가
정부 “활동지원사 시급 2000원 증액”… 전문가 “장애인 소외 더 심해져 문제”

“활동지원사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굶어 죽었을 겁니다.”

중증 지체장애인 추모 씨(58)는 1월 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돼 10일간 자가격리했을 당시를 돌이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39도 넘는 고열과 기침, 인후통과 오한도 힘들었지만 더 큰 문제는 생존 그 자체였다.

장애로 손발을 움직일 수 없는 추 씨는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 도움 없이는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격리된 상황에서 활동지원사에게 와 달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활동지원사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도울 의무도 없었다. 추 씨는 “이러다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추 씨는 보건소와 구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담당이 아니다’라는 차가운 답만 돌아왔다. 그를 도운 건 “혼자 둘 수 없다”며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찾아온 활동지원사 홍모 씨(64)였다. 홍 씨는 민간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지원한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채 추 씨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 셀프 의료 체계서 소외된 장애인
최근 코로나19 진단·치료 체계가 ‘셀프 검사’와 ‘재택 치료’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장애인과 그 가족의 괴로움은 더 심해졌다.

지난해 11월 말 ‘재택치료 우선’ 정책 시행 전에 장애인은 확진 뒤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해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재택치료와 자가격리로 활동지원사마저 집에 오지 않아 추 씨처럼 홀로 남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달 초부터는 코로나19 증상이 있어도 자가검사키트에서 양성이 나와야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셀프 검사’ 역시 난관이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유진우 씨(27)는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 보니 박스를 뜯고 면봉을 꺼내 코에 넣는 데만 1시간이 걸린다”고 호소했다. 남정한 실로암 시각장애인센터 소장은 “시각장애인은 검사용액통을 작은 구멍에 끼우는 것부터 어렵다. 활동지원사 도움 없이는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선별진료소 대기도 ‘도전’이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아들을 둔 최모 씨(50)는 “지난달 중순 선별진료소에서 영하 10도 추위 속에 몸무게 50kg 아들을 안고 30분가량 대기했다”며 “미리 연락하면 돕겠다던 보건소는 내내 통화 중이었다”고 했다.

최근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장애인을 돌보던 가족이 확진되는 바람에 부담이 가중되는 경우도 늘었다. 최 씨는 “가족이 시간차를 두고 잇달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픈 채로 돌봄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시급 2000원 더 주면 해결?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1일부터 확진된 장애인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에게 수당을 시간당 2000원 더 주겠다고 발표했다.

경기도의 한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활동지원사 이모 씨(53)는 “시급 2000원 더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은 “활동지원사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방호장비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난 상황일수록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 돼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장애인 소외가 더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중증장애인#셀프방역#장애인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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