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대권 도전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수사를 시작한 지 다섯달 동안 공소장 7개를 같은 재판부가 받은 것은 거의 처음 본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을 두고 법조계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통상 검찰은 직접수사를 하거나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에서 이첩한 사건을 재판에 넘기는, 즉 공소제기(기소)와 공소유지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에 따라 통상 기소할 때 만드는 공소장은 1개 사건 당 1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종종 재판이 시작된 뒤 다른 범죄 발견 시 검찰이 추가 기소하면 재판부는 이를 기존 사건과 병합해 재판을 같이 진행하거나 별개 재판으로 진행합니다. 또 검찰이나 변호인 측 요구로 재판부의 허가를 얻어 공소장을 변경하기도 합니다.
● 김만배, 뇌물→배임→청탁금지법 등 세 차례 기소
그런 상황에서 이번 재판에선 관련자에 대한 기소가 모두 7차례나 이뤄졌습니다. 먼저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는 지난해 10월 21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를 뇌물 혐의로 구속 기소했습니다. 2013년 대장동 개발업체 관계자로로부터 3억5200만 원을 받고, 2014~2015년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측으로부터 700억 원의 뇌물을 받기로 약속한 혐의입니다.
당시 검찰은 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녹취록을 입수한 뒤 유 전 직무대리의 뇌물 혐의는 어느 정도 입증했지만 다른 공범과의 관계 등 수사가 미진했던 탓에 성남도시개발공사에 대한 배임 혐의를 기소하기엔 이른 상황이었습니다. 천화동인 4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가 지난해 10월 18일에서야 귀국한 데다 앞서 같은달 14일 법원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뒤 검찰은 지난해 11월 1일 유 전 직무대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에겐 사업협약과 주주협약 등을 통해 공사는 확정 수익만 받고 최소 651억 원의 택지개발 및 상당한 시행 이익 등 나머지 초과이익을 모두 화천대유 측이 갖도록 해 공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가 2015년 김 씨 등과 결탁해 화천대유에 유리한 공모지침서를 만들고 화천대유 측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도록 배점을 조정했다는 것입니다.
같은 날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김 씨와 남 변호사 그리고 성남도시개발공사 투자사업팀장으로 근무했던 정민용 변호사 등 3명 구속영장은 11월 4일 새벽 결론이 나왔습니다.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재청구만에 발부됐고 남 변호사 영장도 발부됐습니다. 수사에 협조한 정 회계사에 대해 검찰은 구속영장을 아예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장동 5인방 중 막내격인 정 변호사 영장은 기각됐습니다. 이후 검찰은 구속기한 만료 전 11월 22일 김 씨와 남 변호사, 정 회계사 등 3명을 기소했습니다. 이들 모두 유 전 직무대리의 배임 혐의 공범으로 기소됐습니다.
정 변호사도 기소를 피해갈 순 없었습니다. 한달 뒤인 지난해 12월 21일 정 변호사를 배임 혐의 공범으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최근 공개된 녹취록 등에 따르면 남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하나은행 관계자 등과 만나 “무간도 영화 찍는 것처럼 공사 안에 우리 사람을 넣어 뒀다”고 말했는데 ‘우리 사람’은 정 변호사를 의미합니다.
이후 다섯 번째 기소는 의외의 사건에서 나왔습니다. 올해 1월 28일 검찰은 김만배 씨를 추가 기소합니다. 지난해 10월 1차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교도관에게 165만 원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서울구치소에 들어갔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지갑 등 휴대품을 돌려받으면서 교도관에게 “간식이라도 사먹으라”면서 지갑에 있던 현금을 모두 건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해당 교도관의 신고로 서울구치소 측이 경찰에 신고 내용을 통보한 후 결국 김 씨는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여기까지 언급한 5가지 기소된 사건은 모두 같은 재판부로 배당돼 같은 사건으로 병합됐습니다.
다만 검찰이 지난달 22일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과 남 변호사를 뇌물수수 및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한 사건은 아직 병합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2015년 3월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 공모를 앞두고 김 씨로부터 “화천대유 측 컨소시엄 대표사인 하나은행이 컨소시엄에 남도록 해 달라”는 청탁을 받은 뒤 그 대가로 화천대유에 입사한 아들을 통해 퇴직금 등 명목으로 25억여 원(세전 50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남 변호사는 2016년 3, 4월경 곽 전 의원에게 50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입니다.
같은 날 검찰은 곽 전 의원에게 뇌물을 건넨 김 씨에 대해 뇌물공여 및 횡령 혐의로 추가 기소를 했습니다. 김 씨가 뇌물혐의로 처음 기소된 뒤 3번째 기소입니다. 결과적으로 9월 말 검찰 전담수사팀이 구성된 뒤 다섯 달만에 모두 7번 기소가 이뤄진 겁니다.
지난달 기소된 곽 전 의원의 뇌물 혐의 관련 사건들도 모두 대장동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에 배당됐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이 사건까지 하나의 재판으로 병합할지 여부를 고민 중입니다.
● 박근혜 사건에서도 못 본 역대급 최다 기소
이 같이 한 재판에서 기소가 7번이나 이뤄진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최근 역대급 재판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에 비춰보아도 이례적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17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뒤 2018년 1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관련 의혹으로 추가 기소됐고 한 달 뒤 새누리당 공천개입 사건으로 또 다시 기소됐습니다. 하지만 세 가지 사건은 모두 병합되지 않고 별개 재판으로 진행됐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비슷한 시기 국정농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프로포폴 투약 등 세 가지 사건을 겪었지만 모두 다른 재판부에서 진행됐습니다.
이처럼 첫 기소 이래 관련자들에 대한 순차 기소와 추가 기소가 많이 이뤄진 것은 대선 주자가 연루된 사건 특성상 3·9대선이라는 데드라인 하에 수사가 진행된 것과 관련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검찰로서도 정치권 등 여론의 압박을 고려하다보니 최대한 수사에 속도를 냈고 일부 수사가 일단락될 때마다 기소한 뒤 다음 단계 수사를 이어가는 편이 수월했던 측면이 컸습니다.
하지만 변수도 많았습니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과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등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수사는 동력을 잃어갔습니다. 게다가 당장 대선이 임박하면서 사실상 수사는 휴지기에 들어갔습니다.
대선 이후 그간 제기됐던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선 전까지 여야 모두 특검 도입을 강조했던 만큼 대선 이후 지형에 맞게 검찰 또는 특검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따라 이 사건 공소장은 7개가 아닌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공판절차 갱신이 마무리된 만큼 다음주 재판은 3·9 대선을 전후로 7일과 11일 각각 진행되고 증인신문도 재개됩니다. 7일엔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팀 파트장 이모 씨가, 11일엔 정 회계사의 추천으로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입사해 전략사업실장을 맡았던 김민걸 회계사가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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