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정민용 변호사가 남욱 변호사와) 관계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괜한 오해를 살까봐 (민간사업자 선정 심사위원회에) 안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 14차 공판에 출석한 김민걸 회계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만약 당시에 증인이 내부 위원으로 선정됐다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물었고 김 회계사는 “저는 거부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재판부가 “정 회계사와의 관계 탓도 있느냐”고 묻자 “(정 회계사와 저의 관계를 남들이) 알면 오해의 눈초리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회계사는 2015년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 선정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으로 정 변호사의 상사였습니다. 검찰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가 공모지침서 작성, 민간사업자 선정, 사업협약 및 주주협약 체결 등 대장동 사업 추진 과정 전반에서 민간에 이익을 몰아주기 위한 부정행위를 실제 담당할 직원으로 김 회계사를 정영학 회계사에게, 정 변호사를 남 변호사에게 각각 추천받아 공사에 채용했다고 봅니다. 김 회계사가 언급한 ‘관계’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에 김 회계사는 당시에도 정 변호사가 심사위에 참여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앞서 11일 열린 13차 공판부터 이어진 김 회계사에 대한 증인신문은 14일 마무리됐습니다. 증인신문이 예상보다 길어지며 이날 재판은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8시 30분쯤 끝났습니다. 18일 열린 15차 공판에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와 대장동 사업 민간사업자로 선정된 ‘성남의 뜰’ 컨소시엄을 구성한 하나은행 부장 이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 김민걸 “정민용, 사업자 선정 심사위원 안 했으면 싶었다”
검찰은 민간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공사 내부 심사위원으로 정 변호사를 참여시켜 화천대유 측을 선정하기 위한 ‘편파 심사’를 했다고 봅니다. 당시 김문기 개발사업1팀장과 정 변호사가 공사 내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사업자 선정 과정을 통해 화천대유가 참여한 성남의 뜰 컨소시엄이 대장동 사업 민간사업자로 선정됐습니다. 김 회계사는 화천대유 관계사인 천화동인 4호의 실소유주이자 정 변호사의 대학 선배이기도 한 남 변호사가 당시 대장동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만 김 회계사는 정 변호사가 남 변호사에게 유리한 심사를 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검찰이 말하는 ‘편파 심사’는 아니었고 애초에 그 부분은 걱정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김 회계사는 반대신문 과정에서 피고인 측이 “정 변호사가 내부 위원으로 선정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자신의 검찰 조사 당시 진술의 의미를 묻자 “원래 (사업자 선정 업무는) 전략사업실 업무가 아니어서 우리 부서 팀장(정 변호사)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가장 큰 취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회계사는 정 회계사의 추천으로 공사에 입사한 시기를 즈음해 남 변호사, 정 변호사, 정 회계사와 4명이 함께 만난 적이 있다는 증언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 회계사는 김 회계사에게 “(대장동 사업 공모를) 잘 준비하고 있는데 외부 청탁이 들어올 수 있으니 막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김 회계사는 이 말의 의미에 대해 “아무래도 여러 컨소시엄이 경합하다 보니 다른 쪽에 유리한 혜택을 주게 되는 것은 안 된다는 취지였다”고 했습니다. 또 이 자리에서 청탁은 없었고, 괜히 오해를 살까 봐 이후 정 회계사와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 김민걸 “대장동 이익, 평가보다 클 것으로 봤다”
앞선 13차 공판에서 김 회계사는 정 변호사가 2015년 1월 26일~28일경 공모지침서 초안을 출력해왔고, 지분에 따라 수익을 배당받지 않고 임대주택 부지나 그에 상응하는 액수의 현금을 받는 ‘확정 이익 방안’을 보고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 회계사는 당시 “지분대로 이익을 나누는 것이 보통이라 예상 밖이어서 (확정 이익 방안이) 의아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한국경제조사연구원에서 작성한 ‘대장동 사업 타당성 평가 결과보고’가 사업 수익을 “보수적으로 산정했다고 생각했다”는 증언도 했습니다.
이 말만 놓고 보면 김 회계사의 증언은 ‘대장동 5인방’이 의도적으로 예상 사업 수익을 축소하고, 초과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확정 이익 방안을 채택했다는 검찰의 시각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김 회계사는 재판정에서 여러 차례 본인도 당시 확정 이익 방안이 지분 배당 방안보다 합리적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김 회계사는 “타당성 평가에 비추어 볼 때 (확정 이익 방안이 지분 배당 방안보다) 많은 이익을 우선 수취할 수 있고 안정적 수익의 장점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타당성 평가가 어느 정도 보수적으로 산정됐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럼에도 확정 이익 방안을 택했을 때 공사의 몫이 더 클 거라고 봤단 겁니다.
이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익 규모가 예상치 못하게 커져 민간의 몫이 많아졌을 뿐 당시 확정 이익 방안은 공사에 유리한 것이었다는 피고인 측 주장과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김 회계사는 “당시 이익을 선취하는 것이 공사에 합리적이고 유리한 선택이 아니었냐”는 정 변호사 측 질문에 “저희는 그렇게 판단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김 회계사는 13, 14차 공판에서 검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본인의 검찰 조사 당시 진술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본인의 해석이나 의견을 낼 때는 대체로 피고인 측 주장에 부합하는 증언을 했습니다. 또 증거로 제출된 서류나 몇몇 피고인들의 진술에 비춰 본인이 알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없다”고 답하고 가정과 추정으로 답변을 이어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하나은행 부장 “천화동인 1~7호 대장동 사업 참여 작년에 알아”
18일 열린 15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하나은행 부장 이 씨는 검찰과 김만배 씨 양측 모두 증인으로 신청한 인물입니다. ‘성남의 뜰’ 이사이기도 한 이 씨는 지난해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씨는 이날 성남의 뜰에 특전금전신탁 방식으로 투자한 곳이 김 씨, 남 변호사, 정 회계사 등이 소유한 천화동인 1~7호라는 사실을 “2021년 일이 터지고 나서야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 씨는 사업 초기 정 회계사에게 화천대유 측 출자지분 중 일부를 특정금전신탁 방식으로 변경해 출자하는 방안을 요청받았는데, 성남의 뜰에 출자하기로 한 3개 은행 중 철수하는 곳이 생길 경우 신용등급이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정 회계사의 설명이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당시 정 회계사는 이 씨에게 출자자가 드러나지 않는 특정금전신탁으로 화천대유 혹은 화천대유 주주가 들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특정금전신탁으로 성남의 뜰에 출자한 것은 천화동인 1~7호였고, 이를 통해 대장동 민관합작 개발 추진 이전에 대장동 민간개발을 추진하던 ‘업자’들인 정 회계사, 남 변호사 등이 대장동 사업에 참여해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씨는 “(금융기관 입장에서) 당연히 문제 소지가 있는 것인데 나중에 알다 보니 이의제기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며 “(사업을 같이 하기로 화천대유 측과) 논의가 안 된 분들이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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