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사에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 있습니다. 한 나라를 이용해 다른 나라를 제압한다는 뜻입니다. 요즘 미국이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우디아라비아에 손을 내미는 모양새가 이이제이와 닮았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을 저지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에 따라 다른 공급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베네수엘라 등에 원유 증산을 요청했습니다.
인권 문제와 독재 등으로 거리를 둬왔던 이들 국가의 협조를 구해야 할 만큼 미국 상황이 절박해 보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밖으로는 러시아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 안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싸우고 있습니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7.9% 상승했습니다. 40년 만에 최대 상승 폭입니다. 생산자물가지수(PPI)는 같은 기간 10% 급등했습니다. 전쟁으로 급등 중인 유가를 안정시키지 않고서는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어렵습니다. 유가 상승에 대해 백악관은 ‘푸틴 때문이야’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바이든의 지지율은 하향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37·사진)입니다. 2017년 아버지 살만 국왕에 의해 왕세자로 책봉된 뒤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워 왔습니다. 190cm의 큰 키에 법학을 전공한 무함마드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제1부총리입니다. 동시에 국방장관과 왕실 직속 경제위원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무함마드는 약 600조 원에 이르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를 이끌며 전 세계에 투자하고 있는 큰손입니다. 그는 사우디를 기존의 석유 의존적 경제에서 탈피해 첨단기술과 민간 투자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하는 국가 개발 프로젝트 ‘비전 2030’을 추진 중입니다. 그가 미국의 전기차 기업 루시드모터스에 투자해 지분 62%를 보유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그는 게임 및 스포츠 산업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 구단주이기도 한 무함마드는 최근 우리나라의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와 넥슨에도 투자해 2대 주주로 올라섰습니다. 무함마드는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이자 여성 인권을 억압해 온 장본인으로 지목되어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럽습니다.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바이든으로서는 무함마드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무함마드가 미국의 증산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입니다. 무함마드는 중국에 수출하는 원유 일부의 결제를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달러 패권에 도전하며 기축통화 반열에 오르려고 하는 중국 편을 들었으니 바이든의 심기가 불편할 겁니다.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에 패트리엇 방공미사일을 재배치하는 등 안보 지원으로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과연 미국은 무함마드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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