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 합의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 갖춘 협약 마련
정부-기업-시민 모두 플라스틱 줄여야
2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동참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된 것입니다. 정식 명칭은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End plastic pollution : Towards an international legally binding instrumen)입니다.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기 위한 국제 협약 마련이 공식화된 것은 처음입니다.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약이 만들어집니다.
UNEA가 낯선 분들이 계실 겁니다. UNEA는 유엔 내에서 환경 부문 최고 의사결정기구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유엔 회원국 전체가 참여합니다. 175개 회원국 정부 대표단과 국제기구 등 2000여 명이 대면 및 비대면으로 참석한 이번 총회에서 이 플라스틱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 플라스틱 생산-사용-폐기 전 과정 규제 예고
국제 사회가 사상 처음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규제하겠다고 나선 점은 의미가 상당히 큽니다. 그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UNEA 결의안은 몇 차례 나온 적이 있지만, 이번 합의는 플라스틱 전 주기 규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바다에 떠내려간 플라스틱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생산과 사용, 재활용 및 폐기 등 전 과정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플라스틱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겠죠.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규제가 가시화되면 산업·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전망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식품 포장재부터 일상 용품, 산업 자재 등에 플라스틱이 안 들어간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규제가 시행되면 일회용품을 사용하던 생활 패턴이 다회용품, 재사용과 재활용품 중심으로 바뀔 수 있고, 석유·화학 업계 등 산업계 전체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상되는 파급력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이번 결의안이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5도 이내로 막는다는 내용을 담은 파리 기후변화당사국총회 협약(2015년)에 버금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외신에서는 “파리 협약 이후 가장 큰 기후 합의”(가디언) “파리 이후 최대 녹색 합의”(로이터) 등으로 표현했네요.
● 늘어나는 플라스틱, 코로나19로 폭증
우리 플라스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잠깐 짚어보겠습니다.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은 수년 전부터 지적돼 왔습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은 “2050년이 되면 무게 기준으로 바닷속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해 충격을 던져줬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3억1100만t 으로, 당시엔 2050년 플라스틱 생산량을 11억2400만t으로 전망했습니다. 플라스틱 생산량은 느는데, 전체의 5% 정도만 제대로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땅에 버려지거나 바다로 떠내려간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플라스틱 사용량은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사회에 접어들고 배달이 늘어나면서 더 급증했습니다. 우리나라만 봐도 알 수 있죠.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가정에서 배출된 페트병과 배달용기 등 플라스틱 포장재는 전년 대비 18.9% 늘었습니다. 완충재 기능을 하는 스티로폼 같은 발포수지는 14.4%, 포장용으로 많이 쓰이는 비닐도 9.0%나 늘었습니다. 같은 해 국내에서 사용된 택배 상자는 33억7367개로 전년 대비 21%나 폭증했네요.
플라스틱이 늘어나면? 우리가 배출한 플라스틱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바다 물고기에서, 공기 중에서, 물에서 검출된 미세플라스틱 문제는 이제 당장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 2년 간 구체적 협약안 만들어야
국제사회가 사상 처음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규제하는 데 동의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2024년 말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줄일 구체적인 국제 협약안을 마련하겠다는, ’마감 시한‘만 만들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엔 회원국들은 올 하반기 ’정부간 협상위원회‘를 꾸리고 2년 동안 실무적인 내용을 조율하기로 했습니다. 플라스틱 감축 목표 구체화, 플라스틱 생산 및 사용 제한, 플라스틱을 대체할 기술 개발과 이전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물론 관련 업계와 시민단체가 치열하게 협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플라스틱 문제에 대해서는 저마다 해법이 다를 수 있고, 이해관계도 갈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국과 자국 기업에 유리한 문구를 넣기 위해 애를 쓸 수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자금이 많은 강대국과 대기업만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서는 모두가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오늘의 ’반짝반짝 우리별‘은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팀이 2020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연구 말미에 실린 내용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가 플라스틱 감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2030년에는 연간 최대 5300만 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간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묘책은 없다”면서도 “다양한 방법을 시급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부 정책의 혁신, 기업의 적극적인 플라스틱 감축, 시민의 철저한 실천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를 줄일 수 없다는 의미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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