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산업부엔 무슨 일이…
산업부, 기관장들 호텔로 불러 압박… 당시 사장들 “불이익 두려워 사표”
취임 50일 白 “국정철학 공유해야”… 이틀후 “발전4社 사장 사표” 발표
白 취임 전후 기관장 1차 물갈이… 2018년 초부턴 ‘탈원전 드라이브’
윤호중,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 “검찰공화국으로 가는 신호탄 우려”
“취임 후 공공기관장과 간담회를 열고 국정철학을 공유했습니다. 같이 가실 수 있는 분들은 같이 갈 겁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이던 2017년 9월 11일. 세종시의 한 식당에선 취임 50일을 맞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그의 발언은 곧 산하 공공기관장 ‘물갈이’가 본격화될 것이란 신호탄이었다.
이틀 후 산업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전력 발전자회사 4곳 사장이 사표를 냈다. 새 정부 출범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자율적으로 낸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이들이 낸 사표는 19∼22일에 모두 수리됐다.
○ ‘물갈이’ 암시 발언 5일 전 “사표 방침 정해졌다”
검찰이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강제수사에 속도를 내며 문재인 정부 초기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장 ‘줄사퇴’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2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백 장관의 물갈이성 발언 며칠 전 산업부 A 국장이 한전 발전자회사 사장들을 차례로 광화문 모 호텔 라운지로 호출했다.
전직 발전자회사 사장 B 씨는 “9월 초 ‘긴히 전할 말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갔다. 사표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B 씨는 이 자리에서 A 국장이 “사장님 사표를 수리하기로 정부 방침이 정해졌다. 사표를 내라는 요청이 오면 ‘일신상의 이유’를 사유로 적어 내달라”고 했다고 기억했다.
다른 발전자회사 사장 C 씨는 “A 국장을 (백 장관 발언 5일 전인) 2017년 9월 6일 오후 2시경 만났다”고 기억했다. B 씨와 동일한 장소였다. C 씨는 사표 제출 요구를 받고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C 씨는 “이어 ‘차라리 권고사직으로 하자. 그래야 나도 할 말이 있지 않겠느냐’고 항의했는데 A 국장이 ‘그건 안 된다’며 거절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B 씨와 C 씨는 모두 “사직 의사가 없었지만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워 요구하는 대로 사표를 냈다”고 입을 모았다.
○ 공공기관장 교체 후 탈원전 드라이브
산업부 공공기관장 줄사표는 2017년 7월 백 전 장관 취임 전후로 시작됐다. 비위가 적발됐거나 노조와 갈등을 빚던 공공기관장이 첫 타깃이었다. 노조와 충돌했던 ‘친박(친박근혜)’ 출신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시작으로 감사원 감사를 통해 채용비리가 지적된 정용빈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 등의 사표가 이어졌다.
이어 B 씨와 C 씨를 포함해 한전 발전자회사 4개사(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사장들이 일제히 사표를 냈다. 물갈이가 본격화된 2017년 12월 기준으로 한때 산업부 산하 기관장 절반 이상이 공석이었다.
산업부는 산하 공공기관이 41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59개)에 이어 부처 중 2번째로 많다. 산업부 줄사표가 일단락된 후 과기정통부, 환경부 등 다른 부처 산하 공공기관장 물갈이도 이뤄졌다. 에너지 분야를 비롯해 산하 공공기관장을 대거 교체한 산업부는 2018년 초부터 탈원전 드라이브를 본격화했다.
산업부의 공공기관장 사퇴 종용 의혹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2019년 초 백 전 장관 등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표면화됐다. 서울동부지검은 고발장 접수 후 3년 2개월 만인 이달 25일부터 산업부와 공공기관 8곳을 연달아 압수수색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9일 라디오 방송에 나와 검찰의 갑작스러운 수사 재개에 대해 “3년 전 수사해서 혐의가 없다고 덮어놨던 것”이라며 “새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강제수사를 시작한 것에 대해 ‘검찰공화국’으로 가는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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