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지만 계층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두 청년의 사랑과 일탈을 담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년)는 명작으로 꼽힙니다. 가난한 청년이 부자인 친구 행세를 하는 이른바 리플리 증후군을 다룬 영화로서 미국에서 ‘리플리’(1999년)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습니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톰 리플레 역으로 데뷔해 세계적 스타로 올라선 배우가 프랑스의 알랭 들롱(87·사진)입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알랭 들롱이 최근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겁니다. 그는 스스로 안락사를 요청하고 가족도 이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알랭 들롱은 이미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안락사는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안락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2019년 뇌졸중 수술을 받은 그는 현재 스위스에 거주 중입니다. 스위스는 프랑스와 달리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나라입니다.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안락사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음을 맞는다는 의미에서 최근 하나의 권리로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 서유럽과 미국의 일부 주에서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습니다.
안락사는 의료진이 직접 약물을 주입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됩니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더 이상 연명 치료 없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며 사망에 이르는 것을 존엄사(尊嚴死)라고도 합니다.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과 같은 치료를 받지 않지만, 통증 완화 치료와 함께 영양분 물 산소 등은 공급받습니다. 환자의 동의 여부에 따라 자발적 안락사와 비자발적 안락사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웰다잉(well dying)을 추구하는 풍조와 함께 죽음을 대하는 태도나 인식도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2018년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이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건수(누적)는 121만 건이 넘습니다. 환자가 보조적 완화 치료를 받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의미 있게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의료적 오판의 가능성과 악용 가능성이 우려되기도 합니다. 경제적 문제로 인해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거나 안락사로 위장한 살인 범죄의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안락사 찬반 논쟁의 본질은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의 선택을 계기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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