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이달 초 850개 러시아 매장을 폐쇄한 맥도널드의 조치는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맥도널드 체인점의 로고인 M자형 ‘골든 아치’가 들어선 나라들 사이에선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론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1999년 출간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프리드먼은 2005년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에서 세계화로 인한 지구촌 번영도 예측했다. 지금 프리드먼의 주장은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탈(脫)세계화’ 역풍이 거세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는 지난주 주주 서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가 30년 동안 경험했던 세계화 흐름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단언했다. 뉴욕타임스도 탈세계화 시대를 전망했다. 여러 국가에서 자체적으로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세계적으로 이민자 수도 줄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소련 해체를 기점으로 본격화해 그동안 지구촌의 번영을 이끌어왔다. 선진국들은 값싼 인건비를 찾아 공장을 옮기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후발국들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와 기술을 축적했다. 러시아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세계 금융시스템에 편입됐고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세계대전의 위협은 줄었고 글로벌 시장은 커졌다. 과속하다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한국에도 황금시대였다.
하지만 세계화는 이미 거센 도전을 받고 있었다. 선진국일수록 일자리가 사라지고 중산층이 무너졌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의 실업률이 다른 제조업 강국에 비해 나빠지자 오바마 정부는 해외 이전 기업을 다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 정책을 본격화했다.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 대란을 겪자 ㉠가속페달을 밟았다. 동시에 세계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무기화하려는 움직임도 커졌다. 원자재 수출 규제와 이번에 러시아를 국제금융결제망(SWIFT)에서 배제한 사례가 대표적으로, 이른바 ‘상호의존의 무기화(Weaponized interdependence)’ 흐름이다.
신냉전이 격화할수록 세계화 역주행은 빨라질 것이다. 다만 프리드먼의 주장이 모두 틀렸다고 하기엔 이른 것 같다. 모스크바의 맥도널드 매장이 문 닫기 몇 시간 전 러시아의 한 남성은 매장 문에 스스로 몸을 묶고 폐쇄를 막으려 했다. 손님들은 맥도널드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위해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러시아 정부의 정보 통제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반전 시위도 거세다. 30여 년간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작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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