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5년 된 중고 철도 ‘모터카’, 새 차로 둔갑한 사연은?[사건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3일 12시 13분


폐기될 철도 공사용 궤도 차량
칠 새로 하고 부품 갈아 끼워 ‘새 차’로 판매
20년 동안 정밀안전진단도 안받아
부실 장비로 건설업 자격 얻고, 공사 따내
“사고 발생 시 대형 인명피해 우려”

“1990년대 만든 철도차량이 서류상으로는 2014년에 제작된 것으로 기록돼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지난달 동아일보로 이런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모터카’라고 하는 생소한 궤도장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터카란 ‘철도 선로보수 등 궤도공사를 할 때 장비나 자재를 옮기는 데 사용되는 궤도차량’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궤도 위를 달리는 트럭입니다. 철도궤도공사업을 하려면 한 대에 5억 원 가량으로 알려진 모터카를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합니다.

철도공사 현장에서 이용되는 일반적인 모터카의 모습. 철도궤도공사업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가격이 대당 5억 원 수준으로 알려진 모터카를 1대 이상 필수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한국철도공사 제공
철도공사 현장에서 이용되는 일반적인 모터카의 모습. 철도궤도공사업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가격이 대당 5억 원 수준으로 알려진 모터카를 1대 이상 필수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한국철도공사 제공


제보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만들어진지 오래돼 진작 폐기됐어야 할 모터카들이 새로 만들어진 것처럼 허위 등록돼 현장에서 쓰이고 있다’는 것.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한 명 거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철도업계가 좁은 탓에 인터뷰에 응해주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법원 판결문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2020년 A 사는 법원에 “경쟁업체 B 사가 입찰 자격으로 제시한 모터카는 2014년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오래 전 제작된 것으로 의심된다”며 B 사와 한국철도공사의 공사 계약을 무효로 해야 한다는 소송을 냈습니다. B 사의 모터카 제조일자가 허위이니 이를 근거로 이뤄진 철도공사와의 계약도 무효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B 사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입찰 절차와 서류만 보면 이상이 없고, B 사의 모터카가 2014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 “새 차를 그 값에 팔겠나. 그게 전부 중고차”
동아일보는 B 사의 모터카를 직접 제작했다는 철도장비 수리업자 C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C 씨에게 전화를 걸어 ‘모터카가 2014년에 제작된 것이 맞느냐’고 물어보니 대답은 이랬습니다.


C 씨는 10여 년 전 서울교통공사 등으로부터 중고 모터카 여러 대를 헐값에 사들였다고 합니다. 당시 C 씨가 사들인 모터카는 이미 20여 년 동안 사용해 내구연한이 다한 ‘불용품’(쓰지 못하게 됐거나 쓰지 않는 물품)이었습니다. 중고 모터카를 사온 C 씨는 부품 일부를 교체하고 색을 새로 칠하는 등 수리해 새것처럼 만들었다고 합니다. C 씨는 국토교통부가 철도차량 완성검사 전문기관으로 지정한 민간업체에 “2014년 새로 제조했다”며 성능시험을 의뢰해서 공인까지 받았습니다. C 씨가 2014년 이렇게 수리한 모터카를 2017년경 약 2억 원에 팔았다고 합니다.

C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새 모터카는 5억 원이 넘는다. 그 차(모터카)는 불용품으로 낙찰 받은 중고로 만들었으니 중고 값에 판 것이다. 새 차를 미쳤다고 그 가격에 팔겠느냐”라며 “그게 전부 중고차”라고 털어놨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터카들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요? 철도차량에는 ‘기대수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철도안전법에 따르면 철도차량은 만들어진지 20년 뒤부터 3~5년마다 정밀안전진단을 통해 안전과 성능을 확인받아야만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불용품을 수리해 마치 새로 만들어진 것처럼 등록된 모터카들은 이후 20년 동안 정밀안전진단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엔진과 차체, 미션 등 핵심 부품은 낡아 언제 큰 사고를 유발할지 모르는 차량들이 오랫동안 안전진단도 받지 않는 채 철로 위를 달리는 것입니다.

철도차량 제조업계에서 35년 동안 종사한 한 전문가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꾸준히 하중이 가해져 차체가 약해진 상태에서 사고가 나면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년 동안 차체에 반복적으로 가해진 하중은 정비를 통해 회복되지 않는다”며 “이런 장비가 여전히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여객차가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넘기면 안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 1977년 생산 차량도 공사 수행
철도차량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국토부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국토부는 현장에서 잡음이 나오자 지난해 2~3월 당시 철도궤도공사업 등록 업체 총 41곳의 소유 모터카를 전수조사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실을 통해 국토부의 전수조사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의 자문을 받아 이 자료를 분석해보니 최소 21개 업체 소유 모터카에서 등록기준 미달에 해당할 수 있는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D 사의 경우 2002년 모터카 수리 전문 업체로부터 모터카를 단돈 1100만 원에 구매했습니다. D 사가 구매한 모터카는 1977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차량이었습니다. 구매 당시 만들어진지 25년이 지난 차량이었던 겁니다. D 사는 이 장비로 철도궤도공사사업자 자격을 따내 공사를 수행해왔습니다. 이 모터카는 다른 두 업체에 차례로 소유권이 넘어가며 해당 업체들이 철도궤도공사사업자 자격을 따내는 데 사용됐습니다.

이밖에 다른 4개 업체는 D사의 모터카와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모델을 가지고 있다고 신고했습니다. C 씨로부터 중고 가격에 모터카를 사들여 제조일자를 속인 업체도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대놓고 내구연한이 지난 모터카로 사업자격을 따낸 업체도 있었습니다.

E 사는 국토부 조사에서 기존 보유하고 있던 모터카를 폐기하고 지난해 12월 23일 모터카 제작업체로부터 새 차량을 구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E 사의 구입 가격은 약 2억 원. 그러나 하루 뒤인 같은 달 24일 해당 제작업체는 동일한 설계의 모터카를 5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했습니다. 사실이라면 E 사는 새 차를 3억 원이나 싸게 산 셈이지요. 한 업계 관계자는 “기존 장비를 마치 새로 구입한 것처럼 허위 등록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습니다. E 사와 모터카 제작업체 관계자는 저렴한 가격에 모터카를 거래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철도궤도공사업을 하는 D 사가 사업자 등록을 할 당시 증빙한 보유 모터카 사진. D 사는 1977년 일본에서 제작된 모터카로 2002년 철도궤도공사업에 등록한 뒤 공사를 진행해왔다. 지난해 국토부 전수조사 결과 자료를 분석해 보니 D 사의 모터카와 동일한 모델로 추정되는 장비들이 여럿 발견됐다.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실 제공
철도궤도공사업을 하는 D 사가 사업자 등록을 할 당시 증빙한 보유 모터카 사진. D 사는 1977년 일본에서 제작된 모터카로 2002년 철도궤도공사업에 등록한 뒤 공사를 진행해왔다. 지난해 국토부 전수조사 결과 자료를 분석해 보니 D 사의 모터카와 동일한 모델로 추정되는 장비들이 여럿 발견됐다.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실 제공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기준 미달 장비로 건설업 자격을 유지하는 경우 등록 말소 대상입니다. 하지만 국토부가 전수조사를 통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업체는 5곳뿐이었습니다. 이마저도 1개 업체만 등록말소 처분을 받았고, 3개 업체에는 영업정지 처분만 내려졌을 뿐 아니라 국토부에 따르면 나머지 1개 업체는 아직 아무런 행정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던 업체 중 2곳은 정지 기간이 끝나 궤도공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토부는 지난해 8월 문제가 된 철도궤도공사업체와 모터카 수리·제작업체 등 10여 개 업체를 경찰에 고발했고, 이와 관련된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 “누가 죽어야 바뀔 것”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며 철도궤도공사업계 또한 중대한 인명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처벌 대상과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공사 현장에는 아직도 허위등록된 장비가 투입되는가 하면, 이 같은 장비로 공사업 자격을 따낸 업자들이 공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철도 관련 공공기관에서 수년간 일하다 퇴직한 한 관계자는 “여객차량 운행시간이 종료된 뒤에 현장에 투입되는 장비라 그동안 관리감독이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철도)업계가 좁은 탓에 제대로 규제가 작동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아직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용객들이 타고 다니는 여객차가 아니라고 해서 이 같은 문제들을 방치해도 되는 걸까요.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고가 발생해야 부랴부랴 법을 바꾸고 전수조사에 들어가잖아요. 누가 죽지 않는 이상 바뀌는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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