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의 최측근 법원장
2020년 윤석열 직무정지 사흘뒤… 재판장 등 9명 불러 입장표명 요구
7명이 “尹재판에 영향 우려” 반대… 조국 재판 김미리 등 2명은 찬성
법원 내부 “정치 개입 시도” 비판… 閔 “재판장 의견 들어본 것” 해명
김명수 대법원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사진)이 2020년 11월 말 대검찰청이 작성한 ‘법관 사찰 문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일부 재판장들에게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직무정지 명령이 내려진 지 사흘 만이어서 법원 내부에선 “법원장 권한으로 재판 독립을 침해하고 정치 개입을 시도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 “입장 표명 안 돼” 대다수 반대
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민 전 원장은 2020년 11월 27일 오후 김병수 당시 형사수석부장판사와 8명의 재판장을 불러 ‘법관 사찰 문건’ 논란에 입장을 표명할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주요 사건 재판부 분석’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2020년 2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판사 37명의 출신 고교·대학, 주요 판결, 세평 등을 담고 있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 문건 작성을 포함해 4가지 사유로 윤 당선인에게 직무정지 명령을 내렸다.
민 전 원장이 소집한 자리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맡은 김미리 부장판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담당한 유영근 박남천 윤종섭 부장판사,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및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담당한 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 조 전 장관 5촌 조카 사건을 맡은 소병석 부장판사가 참석했다. 당시 모인 재판장 8명 중 6명도 문건에 등장했다.
의견 수렴 결과 김 형사수석부장판사와 김 부장판사 등 2명은 입장 표명에 찬성했다. 반면 나머지 7명의 재판장은 “재판에 영향을 줘 재판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당시 서울행정법원은 윤 당선인이 직무정지에 불복해 신청한 집행정지 사건을 접수하고 재판을 진행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재판장들이 윤 전 총장에게 비판적인 입장을 단체로 내면 행정법원 담당 재판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취지였다.
반대한 재판장들은 “법원이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일부 재판장은 “법관 사찰 문건에 등장하는 판사 관련 정보는 대부분 법조계에서 쉽게 알 수 있는 정보에 불과하고 틀린 것도 적지 않다”고 했다. 다수가 반대하자 김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재판장들을 재차 설득했지만 ‘입장 표명 반대’라는 중론을 바꾸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입장 표명” 주장 판사는 수석부장 영전
민 전 원장이 재판장들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한 지 열흘 만에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법관대표회의에서도 “행정법원 재판이 진행 중이고, 향후 추가로 이어질 재판의 독립을 위해 입장 표명은 부적절하다”며 문건과 관련한 입장을 내지 않는다는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김 대법원장은 당시 법관대표회의에서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한 입장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 송경근 부장판사를 이듬해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수석부장판사에 임명해 논란이 됐다. 당시 법원 내부에선 “법원이 정치에 휘말릴 수 있는 상황을 요구한 판사를 중용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2월 물러나 최근 변호사 사무실을 연 민 전 원장은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건에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입장을 표명할지에 대해 당사자인 재판장들의 의견을 들어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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