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찾은 서울 강서구 지하철 9호선 가양역 1번 출구. 높이 1m 남짓한 알록달록한 캐릭터 조형물 20여 개가 길가에 줄지어 서 있었다. 조선시대 명의 구암 허준(龜巖 許浚·1537∼1615) 선생의 모습을 따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래에는 ‘배는 8할만 채움’ ‘짠맛이 신장에 좋음’ 같은 동의보감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허준테마거리’라고 불리는 이곳이 ‘허준박물관길’(약 1.2km)의 시작점이다. 박물관길에는 테마거리와 박물관 바위 등이 있다.
○ 테마거리 걸으며 ‘허준을 배워요’
가양역에서 허준박물관까지 ‘ㄱ’자로 이어지는 테마거리 곳곳에서 허준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코너를 돌아가면 허준 선생의 생애를 간략하게 적어 놓은 안내판을 마주하게 된다. 광해군의 천연두(두창)를 고쳐 선조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내용 등이 나와 있다.
안내판을 뒤로하고 걸으면 약 2m 높이의 동상이 나온다.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백성을 위해 내민, 책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강서구는 테마거리를 조성하면서 이곳을 포토존으로 꾸몄다. 테마거리를 걷는 내내 발아래로 시선이 자꾸 갔다. 보도블록에는 동의보감에 나오는 약초와 효능이 적혀 있다. 길을 걸으며 약초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러시아어 등 5개 언어로 설명돼 있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허준 선생이 태어나고 생활한 지역에 허준테마거리를 조성했다”며 “따뜻한 봄날 걸으면 백성을 사랑한 그의 발자취와 한의학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테마거리에 있는 허준박물관은 약 2500점의 한의학 관련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허준 선생의 저서들과 다양한 의약학 자료를 모형, 영상, 터치스크린 등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그동안 ‘허준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도 박물관에서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허준 선생의 스승으로 알고 있는 ‘류의태’는 가공의 인물이라고 한다. 실제 스승은 ‘양예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의과시험에 급제해 내의원에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학자에 의해 천거됐다는 기록도 있다. 김쾌정 관장은 “드라마 덕분에 허준 선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잘못된 사실도 많이 알려졌다”면서 “박물관 관람을 통해 올바른 역사적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물관에선 다양한 기획전시도 열린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임을 감안해 계획한 특별전 ‘전염병의 어제와 오늘’(3월 22일∼10월 2일)이 열리는 중이다. 박물관 옥상에는 120여 가지의 약초를 심은 약초밭도 있다. 강 건너 북한산을 시야에 가리는 것 없이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조성돼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1000원. 매주 월요일은 쉰다.
○ 동의보감 완성된 ‘허가바위’
박물관 뒤편에는 선생을 기리는 ‘허준근린공원’이 있다. 산책로와 어린이놀이터, 음악분수로 꾸며져 걷기 명소로 꼽힌다. 허준 선생과 동의보감(국보 319-1호)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한 ‘허준축제’가 해마다 10월 이곳에서 열린다. 이어 선생이 동의보감을 완성한 곳으로 알려진 천연 바위동굴 ‘허가바위’로 발길을 옮겼다. 어른 10명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선생은 1608년 이곳으로 유배를 와 허가바위 근처에 허름한 집을 짓고 동의보감을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14년 만에 완성된 동의보감은 25편으로 이뤄져 있는데,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박물관길을 다 걷고 아쉽다면 양천향교 역 겸재정선미술관 방문을 추천한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은 조선 후기 화가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진경산수화의 완성자로 알려져 있다. 봄꽃으로 새 단장을 한 서울식물원도 인근에 있어 들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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