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속한 특정 집단에 강한 애착과 소속감을 보이는 현상을 사회학자들은 ‘내집단’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와 달리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외집단’에는 이질감과 배타적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축구, 야구 등 스포츠 세계에서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문화는 동서고금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현재의 소속 팀이 자신의 모국을 상대로 맞서 싸우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요.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스포츠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세계 배드민턴계의 전설 박주봉은 영국과 말레이시아 대표팀 지도자를 거쳐 현재는 일본 배드민턴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18년째 일본 대표팀을 맡으면서 세계적 수준의 강팀으로 만들었습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일본 대표팀과 한국 대표팀이 대결할 때 박 감독의 마음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역할 기대와 일본팀 감독으로서의 역할 기대가 상충하면서 내면적 갈등을 겪었을 수 있겠지요. 해외 진출이 많은 태권도와 양궁 등의 종목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는 빈번합니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53·사진)에게도 ‘운명의 장난’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포르투갈 사람입니다. 2일 발표된 ‘2022 카타르 월드컵’ 조 추첨 결과 한국은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와 함께 H조에 묶였습니다. 벤투 감독은 자신의 소속 팀을 이끌고 모국과 대결해야 하는 묘한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벤투 감독과 한국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은 조별리그 D조에서 한국과 만났습니다. 이때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대표팀의 미드필더로 활약했습니다. 경기 후반 박지성 선수의 침투를 막아선 수비수가 벤투였습니다. 결국 벤투는 박지성의 기민한 움직임을 막지 못하고 눈앞에서 결승골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 골로 한국은 16강에 진출했고 포르투갈은 탈락했습니다. 당시 루이스 피구라는 세계적 공격수를 보유하고도 탈락한 포르투갈로서는 뼈아픈 패배였습니다. 반면 거스 히딩크 감독(네덜란드)이 이끈 한국은 2승 1무, 조 1위로 사상 처음 16강에 오른 뒤 4강까지 파죽지세였습니다.
당시 한국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 벤투는 지도자로서 명성을 날렸습니다. 그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포르투갈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2012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포르투갈을 4강에 올려놓았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 무대도 경험했습니다.
벤투 감독은 이제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카타르 월드컵에 나섭니다. 한국 대표팀 최장수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A매치 최다승(28승) 기록을 세운 벤투호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무척 큽니다. 한국 대표팀과 포르투갈, 두 내집단에 속해 있는 벤투 감독의 심정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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