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 1대만으로 엘리베이터는 꽉 찼다. 어르신들이나 다른 몸이 불편한 사람과 함께 이용하기가 불가능했다. 다른 이용자가 있으면 기다려야 했고 1층을 이동하는 데 1분 정도가 걸렸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보다 3배 이상 시간이 소요됐다.
지난 7일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강서구 가양동 9호선 양천향교역 내부를 둘러보니 A씨가 엘리베이터 대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A씨는 비장애인이 주로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전동휠체어가 뒤로 넘어지며 변을 당했다.
8일 오전 찾은 양천향교역은 전날의 참사로 인해 에스컬레이터 운행이 중단된 상태였다. 사고 소식을 접한 많은 시민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A씨가 엘리베이터 대신 위험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이유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이 역은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리프트를 탈 일이 없지만 (엘리베이터 내부가) 좁아서 불편하긴 해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으면 자리가 날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하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승강장으로 향하던 허태용씨(61·남)씨의 말이다. 허씨는 전날 역사 지하2층 승강장에서 발생한 ‘전동휠체어 장애인 추락사’ 사고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평소 역사를 이용하며 느낀 불편함에 공감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 지점에서 약 40m 떨어진 곳에는 엘리베이터 1대가 있고, 사고 당시 정상 작동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폐쇄회로(CC)TV에는 지하철에서 내린 A씨가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는 모습이 담겼다. 경찰은 A씨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된 경위를 파악 중이다.
허씨는 “나도 이걸(전동휠체어) 5년 탔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탄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며 “무게랑 경사 때문에 위험하다”고 손을 내저었다.
실제 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허씨의 전동휠체어만으로 공간이 가득 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승강장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보다 3배 가까이 더 걸렸다. 허씨는 “다른 사람들이 많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 개통돼 비교적 신설 역사인 양천향교역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만큼 장애인용 리프트를 운행하지 않는다. 통상 장애인용 리프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노후 역사 계단에 설치된다.
사고가 난 에스컬레이터는 현재 운영이 중단돼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전날 현장을 찾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에스컬레이터에 휠체어 진입을 막는 ‘차단봉’이 설치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서울시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양천향교역을 운영하는 서울시메트로9호선에 따르면 차단봉 설치 여부는 설계상 필요에 따른 ‘선택사항’이다.
서울시와 서울시메트로9호선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9호선 모든 역사에 에스컬레이터 차단봉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양측은 수요조사를 마치고 예산 편성을 논의 중이다. 서울시메트로9호선 관계자는 “최단시간 안에 차단봉을 설치할 계획”이라며 “설치 전에는 에스컬레이터에 휠체어 출입을 금하는 안내판 등을 부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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