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나이지리아의 한 대형 쓰레기처리장. 대형 덤프트럭이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구덩이 속으로 박스 수백 개를 쏟아부었다. 터져 버린 박스 속에는 코로나19 백신이 가득했다. 선진국에서 공여는 받았는데 유통기한이 지나 못 쓰게 된 100여만 회 분량이었다. 사람을 살린다는 백신들이 한순간에 쓰레기 더미에 파묻히는 장면은 씁쓸하고도 충격적이었다. 백신 접종률이 고작 5%대에도 못 미치는 저개발 국가로서는 더더욱 분통 터지는 매몰 현장이었을 것이다.
이유나 방식은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폐기되는 백신이 급증하고 있다. 현재까지 누적 폐기량이 233만 회를 넘어섰다. 1회당 대략 20달러로 계산하면 550억 원이 넘는 분량이다. 앞으로 폐기될 처지에 놓인 백신 예약 물량은 더 많다. 올해 국내에 도입될 분량은 1억2600만 회. 쌓여 있는 재고까지 합치면 1억4000만 회분이 넘는데 맞을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불과 7, 8개월여 전 백신 한 방울이라도 놓칠세라 최소잔여형(LDS) 주사기를 구하고, 너도나도 접종 예약 ‘광클릭’을 해댔던 때와 비교하면 때 이른 ㉠격세지감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하기에는 변수도 적지 않았다. 치명률은 낮고 전파력은 높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팬데믹 국면을 바꿔 놓을 것으로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당국자들은 항변한다. 기존의 백신으로는 계속 진화하는 변이 바이러스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백신 부작용 우려도 예상보다 컸다. 그 탓에 5∼11세 접종률은 0.7%에 머물고 있다.
그래도 정부가 더 정교하게 수급 계획을 세웠어야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팬데믹 초기 백신을 제때 구하지 못해 혼쭐이 난 정부가 뒤늦게 계약에 나서면서 예상 물량을 지나치게 잡아버린 측면이 있다. 확진자 폭증 시점에 방역 지침을 되레 완화한 것도 백신을 애물단지로 만들어 버린 셈이 됐다. 항체가 생긴 1470만 명의 확진자들은 이제 추가 접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국내에서는 처치 곤란 신세가 됐지만 그렇다고 백신의 가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전 세계에서는 백신 접종률이 20% 미만인 저개발국이 44개국에 이른다. 공여 백신의 유통기한이 두 달 반 정도만 돼도 접종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들 국가에 국내 예약 분량을 공여하는 방안을 찾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타이밍을 놓쳤다간 소중한 생명을 위해 백신을 나누는 일이 ‘쓸모없어지니 떠넘긴다’는 식으로 폄훼될지 모른다.
동아일보 4월 8일 자 이정은 논설위원 칼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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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코로나19 백신도 유통기한이 있구나.
② 최근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백신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구나.
③ 일부 선진국이 사용하지 않는 백신을 저개발 국가에 지원하고 있구나.
④ 코로나19에 확진된 뒤 항체가 생긴 사람들은 백신을 맞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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