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에서 그물 올려 잡는 어획방식
싹쓸이 대신 자연친화적 어법으로
숭어 스트레스 안받아 최상품 평가
지난해에만 거제에서 390t 잡아
경남 거제 수산마을 항구에서 어부들이 잡은 숭어를 활어운반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숭어 들어왔다!”
18일 오전 11시 반경 경남 거제도 최남단 해금강 앞바다. 벼랑 끝에서 6시간째 망을 보던 차정호 어로장(망쟁이·고기를 관찰하는 어부)이 소리치며 레버를 당기자 가로세로 각각 80m인 대형 그물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심 20m 아래 설치된 그물이 올라오는 시간은 1분 남짓. 퇴로가 막힌 많은 숭어들이 일제히 물 위로 튀어 오르며 힘차게 몸부림쳤다. 그물 안은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
그물을 기다리던 관리선도 곧장 숭어몰이에 들어갔다. 그물 밑으로 들어간 관리선은 그물을 하늘 위로 들어 흩어져 있는 숭어를 어망 가운데로 모았다. 그렇게 잡힌 숭어는 1000마리가 넘었다.
숭어는 전용 운반선으로 활어 운반 차량이 기다리는 거제 수산마을 항구까지 옮겨졌다. 40년 경력의 차 어로장은 “물 위에 사람 그림자만 보여도 도망가는 눈치 빠른 숭어 떼를 상대하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라며 “그 대신 힘들게 잡은 고기는 상처 하나 없는 최상품”이라고 말했다.
○ “인내의 보상으로 바다가 내어준 거제 봄숭어”
이날 차 어로장은 어부들, 동아일보 기자와 함께 오전 5시부터 이곳 바다에 진을 치고 무작정 기다리다 6시간 반 만에 숭어 떼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육소장망(六소張網)’이라는 전통 방식으로 숭어를 잡는다. 숭어가 들 만한 길목에 그물을 깔아두고 기다리고 있다가 어로장이 망루에서 물 빛깔과 물속 그림자의 변화로 어군을 감지해 지시를 내리면 재빠르게 그물을 올려 잡는 방식이다. 물때만 잘 만나면 1만 마리를 한꺼번에 잡을 때도 있지만, 일주일 내내 허탕 치는 날도 있다.
차 어로장은 “바다만 바라보고 한없이 기다려야 해 ‘기다림의 어법(漁法)’으로 불리기도 한다”며 “배를 타고 숭어를 쫓아가서 싹쓸이로 잡는 방식과는 달리 자연친화적 어법으로, 숭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최상품으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그마한 6척의 배들이 일제히 그물을 투입해 숭어 떼를 둘러싸 건져 올렸지만, 인력 부족으로 뗏목과 기계를 이용한 반(半)전통식 어법으로 바뀌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국에서 거제 학동, 양화, 도장포, 다포, 다대, 선창어촌계 등 6곳에서 허가가 났다. 숭어잡이는 2월∼5월 말이 성수기다. 육소장망으로 지난해 거제에서 잡은 숭어는 390t이다.
○ “보전 가치 충분”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 추진
경남 거제시는 육소장망법을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 제도는 해양수산부가 전통 어족 자원을 발굴하고 보전해서 관리한 뒤 전승하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2015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시는 사라져 가는 어업문화를 발굴해 보전·관리하고 지속적인 어촌 경제 발전을 꾀하기 위해 육소장망의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거제시는 2200만 원을 들여 지정 전략을 수립해 5월 18일까지 해수부에 공모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되면 유산 자원 복원, 환경 정비, 관광 자원으로 활용 등의 명목으로 3년간 7억 원(국비 70%, 지방비 30%)을 지원받는다.
거제시 관계자는 “반전통식이지만, ‘기다리는 어법’ 측면에서는 전통 어법과 결이 같다”며 “육소장망의 위상과 가치를 더 높이고, 어업인 소득과 관광객 증가 등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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