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두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어 ‘범죄는 만연하되 범죄자는 없는 나라’를 만드는 법이다.”
전국 평검사 대표들이 19일 밤부터 20일 새벽까지 ‘전국 평검사 대표회의’를 연 뒤 입장문을 내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평검사들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경찰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져 국민들이 불법 수사에 노출되더라도 구제받을 수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여당을 향해선 “검찰에 비판적이었던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에서조차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며 “심도 있는 논의와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개혁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촉구했다.
● “범죄자에 면죄부, 피해자에 고통 주는 ‘범죄 방치법’”
전국 18개 검찰청의 수석검사 등 대표 평검사 207명은 19일 오후 7시부터 20일 오전 5시경까지 서울중앙지검에서 마라톤 회의를 열고 ‘검수완박’ 법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했다. 회의에는 지난해 임관한 평검사부터 2008년부터 검사 생활을 해온 수석급 검사까지 실제 피의자를 조사하고 법정에서 공소유지를 맡는 1~15년차 검사들이 참여했다.
10시간에 걸친 난상토론에서 참석자들은 개정법에 대해 “검사가 (경찰 수사에 대해) 기본적인 사실 조차 확인할 수 없게 만들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법”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평검사들은 “결국 범죄자들에게는 면죄부를, 피해자에게는 고통만을 가중시키는 ‘범죄 방치법’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검사가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사건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이지 않고 경찰 조서 등만을 보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 개정법 조항에 대해 평검사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법정에서 필요한 증거를 수집할 수 없고, 경찰의 수사 결과에만 의존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검사 지휘를 받지 않고 압수 물품을 당사자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한 법 조항과 관련해서도 평검사들은 “증거 가치에 대한 판단을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아니라 경찰에 맡겨두는 것”이라며 비판 의견을 냈다.
평검사들은 개정법이 시행되면 ‘인권 보호관’인 검사가 경찰 수사의 인권 침해에 대해 견제할 방법이 없어진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현행 제도에서는 검사가 경찰의 수사권 남용이 있는 사건에 대해 ‘기록을 검찰로 보내달라’고 요청해 전면 재수사할 수 있었지만, 검수완박 법안은 검사의 ‘기록 요청 권한’을 삭제했다”며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해도 검사는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경찰의 피의자 구속 기간을 기존 10일에서 20일로 늘리면서도 ‘불법 체포 및 구금’에 대한 검사의 통제 권한을 축소시킨 것에 대해서도 “모든 국민이 불법 강제수사에 노출되는 위험을 떠안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검사는 경찰의 불법 구금에 대해 즉시 석방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검사는 경찰에 석방을 ‘요구’만 할 수 있고, 경찰은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이를 거부할 수 있다. 검사가 직권으로 구속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도 사라진다.
평검사들은 개정법이 시행될 경우 사건 관계인들이 경찰의 무혐의 결정에 불복해 이의 신청을 하더라도 사실상 검사의 구제를 받기 어려워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평검사들은 “검수완박법은 검사가 경찰에 사건 기록을 보내달라고 더 이상 요청할 수 없게 만들었다”며 “기록이 없으니 (경찰이) 증거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부분인지 알기 어렵고, 어떤 내용으로 보완을 요구할지 경찰에 알려주기도 어려워 고소인의 이의제기 절차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 공정성 등 담보”
이날 평검사들은 ‘검찰 개혁’의 핵심은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시민 등의 민주적인 통제를 받도록 하는 것이고 민주당이 주장하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계속 수사 및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 시민의 의견을 듣도록 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이어 2003년 이후 19년 만에 열린 평검사 대표회의를 앞으로 정례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대검 내규 등으로 법제화해 검찰 내부의 견제 기구로 만들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회의에 참석했던 평검사들은 기자들에게 “수사와 기소를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적절한 기소 여부 판단을 위해서도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며 “검찰 개혁은 어떻게 수사 개시가 공정하게 이뤄지고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지 수사권을 박탈하는 건 ‘민생 범죄’에 대해 구제받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회의에선 김오수 검찰총장 등을 비롯한 검찰 지휘부의 총사퇴 필요성을 거론하는 의견도 적지 않게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 안팎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회의 공식 안건으로 다루지는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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