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부장검사들이 사상 첫 전국 단위 대표회의를 열고 검찰총장과 고위간부들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부장검사들은 9시간여 밤샘 회의에서 김오수 검찰총장 등 수뇌부 사퇴가 더 늦으면 실기한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내는 한편 검찰의 내부 통제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전국 40개청의 부장검사 69명은 20일 오후 7시부터 21일 새벽 4시까지 서울중앙지검에서 ‘전국 부장검사 대표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부장검사들은 검찰총장의 사퇴를 포함한 검찰 고위 간부의 책임있는 자세도 주문했다. 총장과 고검장을 비롯해 지검장급까지 총사퇴를 건의하는 내용을 입장문에 담기위해 부장검사 회의 참석자들의 표결도 거쳤다.
부장검사들은 입장문을 통해 “검찰총장님과 고위 간부님들께 건의드린다”며 “형사사법 붕괴를 막기 위해 다시 한번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앞서 전국평검사회의에서는 총장 등 검찰 지휘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입장문에 담지는 않았다.
전날 민주당이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 꼼수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무력화에 나서며 ‘검수완박’ 입법 폭주의 시동을 걸자 부장검사들은 참담함을 토로하며 더는 물러설 데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밤샘 회의에서 김 총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사퇴 촉구 의견이 모인 것도 상황이 매우 긴박해 사퇴 카드가 더 늦어지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란 위기의식 때문으로 전해졌다.
회의에 참석한 한 재경지검 부장검사는 뉴스1과 통화에서 “총장을 비롯해 고위간부들이 사퇴를 포함한 모든 것을 다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이라며 “사퇴 카드가 유효할 때, 더 늦기전에 직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여서 입장문에도 ‘책임있는 자세’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총장을 비롯한 고위간부의 사퇴 시점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면서도 “빨리 사표를 내서 국회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강경론이 있었고 사퇴 촉구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았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 총장의 사표를 반려하고 청와대로 불러 면담한 이후 대검 대응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고 한다. 한 부장검사는 “김 총장이 청와대에 다녀온 이후 국회 법사위 소위에 간 것 외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데 어제 회의에서 이에 대한 성토도 많았다”며 “김 총장이 뭘 준비하는지,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지 불안하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전했다.
전날 전국평검사대표회의에서 일부 평검사들이 ‘전원 사직’도 거론한 만큼 부장검사들 역시 직에 연연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부장검사는 “평검사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부장들도 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에 회의 참석자 전원이 공감했고 총장 등 윗선만 책임지고 나가라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 부장들은 ‘일선’이고 우리가 다 나가면 수사 일선이 마비돼 곧바로 국민에게 피해가 가는 문제라 입장문에 담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회의에서는 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사퇴 카드 뿐이라는 강경 발언이 쇄도했고 부장검사들도 직을 걸겠다는 문구를 입장문에 넣을지 말지를 두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질서있는 대응 필요성과 민주당을 너무 자극해선 안된다는 김 총장의 자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입장문에는 부장검사의 거취는 담지 않았다. 가급적 정제된 표현을 써 소위 검란(檢亂)으로 비칠 소지를 차단했다고 한다.
검찰 ‘자성론’이 부족하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아들여 검찰 내부 통제에 대한 논의에도 집중했다.
한 부장검사는 “제가 본 어제 회의의 포인트는 전국평검사회의에서 낸 검찰 내부 통제에 대한 제안에 부장검사들이 화답한 것”이라며 “기소대배심이든 수사심의위 강화든 입장문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수사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검찰 내부통제에 대한 각론들이 많이 제시됐다”고 전했다.
A4 두 쪽 분량의 입장문 3분의 1 가량을 자성에 할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오랜 기간 지속된 검찰개혁 논의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소위 ‘검수완박’ 문제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는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반성으로 입장문을 시작했다.
이들은 “검찰이 그동안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온전히 얻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한다”며 “어제 개최된 전국 평검사회의에서 검찰의 공정성 확보방안으로 국민들이 중대범죄 수사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외부적 통제장치, 내부적 견제 등 충정어린 제안을 한 데 적극 공감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저희들도 수사 개시와 종결에 이르기까지 내부 점검과 국민의 감시를 철저히 받는 방안 등에 대해 검토해서 대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입장문에 자성 노력을 먼저 배치한 후 검찰 수사권 박탈에 따른 수사 공백과 국민 피해 우려를 제기했다.
부장검사들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에 남아있는 6대 범죄의 수사개시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뜻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장검사들은 “검수완박법은 범죄방치법이고 박탈되는 것은 검찰의 수사권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이라며 “범죄수사와 재판실무 현장은 큰 혼란을 감내해야 하는데 이는 오롯이 국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제한하고 사법통제를 무력화해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고 경찰이 죄가 없다고 결정하면 피해자는 검사에게 호소할 방법이 없어 헌법상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도 침해된다”며 “대법원, 대한변협뿐 아니라 수많은 국내외 학자와 전문가, 시민단체도 위헌성을 지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장검사들은 검사장 회의에서 제시한 국회 특위가 구성되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나갈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추후 부장검사회의는 국회의 상황 등을 보면서 대응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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