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공간에서 상호 합의로 이뤄진 동성 군인 간의 성관계를 군형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1일 군형법 92조의6에 따라 기소된 남성 군 간부 A 씨와 B 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은 2016년 9월과 12월 근무시간 외에 영외의 B 씨 독신자 숙소에서 상호 합의로 성관계를 맺었고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또 다른 남성 군인과 6회에 걸쳐 관계한 혐의도 받는다.
군형법 92조의6은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징역 2년 이하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건의 쟁점은 근무시간 외에 영외에서 합의 하에 이뤄진 동성군인 간 성관계가 해당 법 조항에서 규정하는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에 해당하는지였다.
1심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 A 씨에게 징역 4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B 씨에게는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2심은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동성군인 사이 항문성교나 유사한 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추행)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처럼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두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동성 간 성행위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추행’이 아니며 군형법에서 규정하는 ‘군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 역시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반대의견을 낸 조재연·이동원 대법관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성행위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이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은 침해된다”며 “처벌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판결은 ‘남성 군인 사이의 성행위는 그 자체로 군형법상 추행죄가 된다’며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종래의 판례를 뒤집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두가온 동아닷컴 기자 ggg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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