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군인 합의한 영외 성행위 처벌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2일 03시 00분


대법, 14년만에 판례 변경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22.3.14/뉴스1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22.3.14/뉴스1
병영 밖에서 상호 합의로 이뤄진 동성 군인 간 성행위는 군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21일 나왔다. 대법원이 2008년 동성 군인 간 성행위를 시간 장소 등에 관계없이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한 지 14년 만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성 소수자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한 중요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군인 성적 자기결정권도 보호”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군형법 96조의 2 위반으로 기소된 남성 군인 A, B 씨에 대해 유죄로 판결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 씨와 B 씨는 2016년 근무하지 않는 시간에 영외에 있던 B 씨의 독신자 숙소에서 2차례 성행위를 한 혐의로 군 검찰이 기소했다. 군형법 96조의 2는 “군인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과 2심은 이 조항에 따라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해당 법 조항이 만들어진 이유와 법이 보호하려는 이익(보호 법익)을 먼저 판단했다. 8명의 대법관은 다수 의견을 통해 이 조항의 보호법익에는 군기와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군형법이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려면 군기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됐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원하는 성생활을 결정할 자유와 원하지 않는 성행위를 거부할 자유를 의미한다.

다수 의견은 이를 토대로 A 씨와 B 씨의 성행위는 군기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모두 침해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수 의견은 “사적 공간에서 합의하에 성행위를 한 경우 두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되지 않았기에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헌법상 평등권, 인간 존엄,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 “별도 입법 없는 한 처벌해야” 의견도
별개의견을 제시한 안철상 이흥구 대법관은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호법익이 아니라고 봤다. 다만 두 대법관도 A 씨와 B 씨를 처벌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하며 “성적 자유를 확장해온 역사적 발전과 성 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추세에 비춰 보면 현행법은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김선수 대법관은 다른 별개의견으로 “합의하에 성행위를 할 경우 군기를 침해한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반면 조재연 이동원 대법관은 피고인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두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현행법은 강제성, 장소 등에 상관없이 남성 군인 간 성행위를 처벌한다”며 “별도의 입법 조치가 없는 한 법원이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넘어 법률을 해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동성 군인 간 성행위#군인 성적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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