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던 2013년 3월 당 회의에서 안건조정제도의 취지를 이같이 표현했다. 그는 “안건조정위는 90일간 숙성 기간을 거쳐 문제 되는 안건을 심도 있게 논의하라는 것”이라며 당시 집권여당이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을 향해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라고 했다. 당시 민주당은 실제 안건조정위를 활용해 새누리당의 정부조직법 강행 처리 시도를 막았다.
그런데 최근 안건조정위를 대하는 민주당의 생각은 9년 만에 180도 뒤바뀐 모습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21일 “안건조정위 구성 요구서를 부득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국민의힘 몽니에 국회의 시간을 더 이상 허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사위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사상 초유의 자당(自黨) 국회의원 탈당이란 편법을 쓴 데 대한 ‘변명’이었다.
과거 야당 시절엔 숙성 기간이라던 안건조정위가 어느덧 국회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돼버린 것. 9년 전 안건조정위를 “국회선진화법제도의 백미(白眉)”라고 치켜세웠던 박 장관도 민주당 의원으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에 검수완박 입법을 마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물불 안 가리는 입법 폭주가 처음은 아니다. 21대 국회 이후 민주당은 이미 친여 성향 의원을 꼼수로 동원하는 방식으로 언론중재법, 공수처법 개정안 등의 안건조정위를 수차례 무력화했다. 자기들이 야당일 땐 숙성 기간이라던 최장 90일의 안건조정위를 3분의 2 이상(4명) 다수로 ‘날치기’해버린 것.
그나마 다행인 건 과도한 무리수에 당내에서조차 역풍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 여파 속 당의 입법 폭주에 침묵했던 온건파 의원들조차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에는 참다못해 반기를 들고 있다. ‘집권여당’ 타이틀이 20일도 채 남지 않은 민주당이 사실상 마지막이 될 안건조정위를 이번엔 어떻게 활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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