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 ‘중재안’을 수용하면서 김오수 검찰총장과 고검장 전원,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일제히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 수뇌부가 동시에 물러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검찰은 박 의장 중재안을 여야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수용하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중재안’에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하고, 검찰 직접수사 범위였던 6대 범죄 중 공직자 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 범죄·대형참사를 삭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나머지 부패·경제 범죄에 대한 직접수사 권한도 중대범죄수사청이 설치되면 완전히 폐지된다.
특수부서 감축에 특수부 검사인원 제한, 경찰 송치사건 등의 별건수사 제한도 담겼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검찰청법 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이번 4월 임시국회 중에 처리하고 공포된 날로부터 4개월 후 시행하기로 했다. 기존 민주당안과 크게 다르지 않고 유예기간을 3개월에서 4개월로 1개월 늘렸을 뿐이다.
검찰은 박 의장의 중재안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검찰청은 이날 오후 “중재안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국회의장 중재안은 사실상 기존 ‘검수완박’ 법안의 시행시기만 잠시 유예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수용불가 입장을 냈다.
지난 5일 사표를 낸 조남관 법무연수원 원장(전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이날 퇴임사에서 “결국 우리나라는 부패공화국이 되고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검찰 내부는 전례없이 격앙된 분위기다.
박영진 의정부지검 부장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도 “황당하고 당혹스럽다. 경악이라는 말 이상은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이에 검사들이 수십개 댓글을 달고 의장 중재안에 반대 의견을 쏟아냈다. 정희도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는 댓글에서 “검찰의 직접수사에서 공직자범죄를 삭제하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 수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정말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검사는 “검찰 우려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 안은 중재안이 아니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썼다.
박철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장은 댓글에서 “대검에서도 당당하게 이런 중재안으로 법이 만들어지는 것은 여전히 절차적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는, 일종의 야합 같은 것이라고 주장해주셨으면 좋겠다”면서 “강도가 힘이 세다고 강취 금액만 줄여서 강도 행위를 인정하자는 제안과 큰 차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강백신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는 “여야 합의는 헌법과 상식을 저버리고 형사법집행 시스템 붕괴를 불러오는 폭거”라며 “헌법 수호의무가 있는 대통령의 책무 또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검찰 내부에선 정치인이 수사대상이 되는 선거범죄를 두고 여야가 야합했다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중앙지검 한 부장검사는 “의장 중재안은 위헌성이 해소되지 않고 특수부를 줄이는 등 검찰조직 개편까지 손대 기존 법안보다 더 악화된 개악안”이라며 “특히 공직자범죄와 선거범죄 등을 삭제하고 4월 내 공포, 4개월 내 시행하겠다는 것은 여권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김후곤 대구지검장 역시 중재안 항목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4개월 내에 시행을 위해 검사들이 가지고 있는 선거사건, 방위사업범죄사건, 대형참사사건은 경찰로 넘겨야겠죠”라며 “곧 다가올 지방선거사건은 접수하고 수사하다 넘겨야 합니까”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한 부장검사는 “검찰의 선거범죄 수사권 박탈로 이제 정치인들은 발 뻗고 잘 수 있게 됐다”고 직격했다.
이 부장검사는 “우리나라는 전세계 유례없이 선거사범은 6개월의 최단기시효를 규정하고 있다”며 “즉 선거일 이후 6개월만 잘 버티면 향후 4년 동안 발 뻗고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선거사범은 사건 특성상 사건관계인이 다수이고 은밀한 거래가 많아 많은 수사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만약 경찰에서 5개월여 수사를 하다가 미진한 상태에서 검찰로 송치할 경우 검찰은 뻔한 사건도 시간 관계상 증거수집을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혐의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부장검사는 “따라서 이 법안은 정치인만을 위한 법안일뿐만 아니라 향후 부정선거 사건 수사를 할 수 없게 만든 법안”이라며 “정치인들이 일말의 양심이 있고 반드시 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면, 글로벌 기준에 맞게 선거사범의 공소시효도 일반 형사범 시효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또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합심해 선거범죄는 왜 뺐을까”라면서 “지방선거는 6월1일이고 개정법 시행은 9월 초순으로 예상되는데 선거사건 공소시효는 11월 31일에 종료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어차피 폐지되는 선거범죄 수사를 3개월간 열심히 할 수도, 할 이유도 없을 것”이라면서 “경찰이 단 2개월여간 이번 지자체장 선거법 위반 사건 수사를 잘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최창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장도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저는 공안검사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6대 범죄에서 4대 범죄만 삭제하는 게 이해가 안되고 특히 선거사건은 검찰의 직접수사가 필요한 영역”이라며 “선관위는 고발을 검찰에 하는데 접수받을 때 경찰서로 안내를 해드려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검찰 내부에선 선거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 삭제를 두고 “누가 봐도 ‘민수완박’(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수사권 완전박탈)”이라는 조롱이 나왔다.
평검사들도 입장문을 내고 “어떠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평검사들은 이날 오후 ‘평검사 대표회의’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4개 중대범죄를 현재 검찰 직접수사에서 제외하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입법 의도를 알기 어렵고, 특히 공직자범죄, 선거범죄에 대한 검찰수사를 박탈하려는 것”이라고 의심했다.
이날 사퇴한 김 총장과 전국 고검장을 향한 성토도 빗발쳤다.
박재훈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총장의 출근길 발언과 모여서 근황토크만 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고검장 회의 발표 내용, 아직까지도 침묵하는 상당수의 검사장들을 보면서 누적된 실망과 좌절은 분노가 돼버렸다”고 격분했다.
박 검사는 “총장은 청와대와 국회에서 어떤 대화를 나눈 것인지, 고검장들과 한 회의 내용은 무엇인지, 국회의장 중재안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던 것은 아닌지 답변해야 한다”며 “무책임하게 사직하고 나가버리면 안된다”고 반발했다.
고검장들을 향해선 “법무부장관과는 무슨 말을 했는지 사직할 생각이 있더라도 답변을 하고 나가시라”고, 검사장들에게는 “왜 꿀먹은 벙어리마냥 가만히 있습니까”고 동참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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