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휴대전화를 버리지 않아도 버린 것이 되는 논리가 무섭다.”
18일 오전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 추가 발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문 기일에 출석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는 “믿을 수 있는 건 재판부뿐이다. 재판마저 없다면 참 암담할 것 같다”며 “재판부 의견에 믿고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앞선 4일 검찰은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유 전 직무대리를 추가 기소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가 지난해 9월 29일 이뤄진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직전에 사실혼 관계인 여성 A 씨에게 자신이 기존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부수고 버리게 했다는 혐의입니다. 하지만 유 전 직무대리는 일부러 A 씨한테 휴대전화를 숨기거나 버리라고 한 적이 없고 그냥 맡겨둔 것인데 어떻게 증거인멸교사 혐의가 성립되냐는 입장을 편 것입니다. 지난해 9월 압수수색 당시 유 전 직무대리가 직접 창 밖으로 집어던졌다가 경찰이 찾은 휴대전화는 대장동 개발 의혹이 불거진 뒤 새로 개통한 두 번째 휴대전화로, 이것과는 다른 기기입니다.
검찰은 18일 “사안이 중대하고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불구속 재판 시 본격적으로 증거 인멸 행위에 나설 우려가 있다”며 유 전 직무대리의 구속 연장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검찰은 “재판 중 이 사건과 관련해 2명(김문기 유한기)이 유명을 달리했다”며 “(유 전 직무대리 측이) 관계자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하면 불행한 사태가 또 생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유 전 직무대리 측이 그동안 “구속 기간 도과를 노리는 변론 행태”로 재판을 지연시켜 왔고, 유 전 직무대리가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 측 변호인은 사실관계를 모두 부인하면서 “막연히 휴대전화 안에 범죄와 관련된 통신 내역 등이 있을 거란 기대만으로 증거인멸죄의 대상이 되는 증거로 볼 수는 없다”며 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의 의도적 재판 지연 주장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변호인 공격이지만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부에 대한 공격”이라고 맞섰고, 극단적 선택 가능성을 거론한 것에 대해선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이 있으면 (그게) 구속 사유가 되느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19일 “증거인멸 우려” 등을 이유로 유 전 직무대리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이에 따라 유 전 직무대리는 최장 6개월을 더 수감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 유동규 변호인 “검찰 추가 기소는 법원에 ‘뜨거운 감자’ 던지기”
지난해 10월 21일 특가법상 뇌물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유 전 직무대리는 원래 21일 0시가 되면 형사소송법상 1심의 최장 구속 기간인 6개월을 채워 석방될 예정이었습니다. 법원이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가 첫 기소 열흘 뒤인 지난해 11월 1일 특경법상 배임 등 혐의로 추가 기소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배임죄는 법원이 지난해 10월 4일 유 전 직무대리에 대한 첫 구속영장을 발부할 당시에도 이미 적용됐던 혐의였습니다.
그러나 4일 검찰이 유 전 직무대리를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첫 구속영장 발부 당시 적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혐의가 추가되면서 추가 구속영장 발부가 가능해졌습니다. 재판단계에서는 수사단계에서처럼 검찰이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절차도 없습니다. 검찰 추가 기소로 재판부 손에 칼자루가 쥐어지게 된 셈입니다.
18일 구속 심문에서 유 전 직무대리 측 변호인의 “‘뜨거운 감자’ 넘기는 식의 추가 기소”라는 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 측은 “사안 자체가 죄가 될 수 없는 것을 무리하게 추가 기소해서 (재판부가) 영장 발부를 고민하도록 한 것이 아니냐”며 “재판부가 (영장 발부를) 안 하면 그건 재판부 탓이지 검사들은 잘못이 없다‘는 식의 기소가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두고 재판부에 부담을 떠넘겼다는 겁니다.
검찰은 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한 시민단체가 경찰에 고발한 것이었고, 올 3월 사건을 경찰에서 넘겨받아 보완수사를 거치는 등 절차대로 기소했을 뿐이란 입장입니다.
● “건강 회복 안 됐다” 구속 연장 뒤 첫 재판 안 나온 유동규
법원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 바로 다음 날인 20일에는 유 전 직무대리의 ’극단적 선택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21일 유 전 직무대리 측 변호인은 유 전 직무대리가 전날(20일) 구치소에서 수면제 50알을 복용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주변에 더 이상 피해를 주느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고 싶다”며 심적 고통을 호소해왔다는 것입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유 전 직무대리가 20일 병원으로 이송돼 검진을 받았지만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던 점 등을 볼 때 사실이 아니라고 맞섰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는 22일 열린 대장동 사건 22차 공판기일에도 건강 문제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 측 변호인은 “어제 (유 전 직무대리를 구치소에서) 접견했는데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고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면서 “(극단 선택 시도 이후) 회복되지 않아서 (법정에) 못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유 전 직무대리의 변론을 분리한 뒤 예정대로 증인신문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재판에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에 대장동 사업 초기 자금을 대준 투자자문사인 킨앤파트너스 전 대표 이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이 씨는 “2015년 2~3월 조우형 대표(부산저축은행 관련 대출 브로커)가 좋은 도시개발 건이 있다고 (투자를) 제안해왔다”면서 “민관합동사업이라 안정성이 높고, 미분양이 날 가능성이 있는 부지가 아니라서 좋은 투자 기회라고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다음 재판은 25일 열립니다. 25일부터 29일까지는 이번 사건의 핵심 증거로 꼽히는 정영학 회계사의 녹음 파일이 법정에서 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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