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로 주변 골목길. 하교하는 초등학생들 쪽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왔다. 차도와 인도가 따로 분리되지 않은 골목길 곳곳에는 불법 주차된 차량이 시야를 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토바이 운전자는 시속 30km 이상을 유지한 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아이들과 오토바이 간 거리가 약 30m로 좁혀진 순간, 운전자는 뒤늦게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깜짝 놀란 초등학생들은 길 가장자리로 몸을 피했다. 다행히 사고는 안 났지만, 하마터면 대형 교통사고가 날 뻔한 순간이었다.
이 도로는 어린이보호구역과 맞닿아 있어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시속 30km 이하로 운행해야 한다. 일명 ‘안전속도 5030’이라 불리는 이 정책은 도심 일반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60km 이하’에서 ‘50km 이하’로, 어린이보호구역 등 각종 보호구역과 이면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30km 이하’로 정한 제도다. 5030 정책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이 일대 이면도로 곳곳에선 시속 30km를 넘어 주행하는 차량이 다수 발견됐다.
○ 50대 중 32대 제한속도 위반
이날 동아일보 취재팀이 가락로 인근 이면도로를 통행하는 차량 50대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총 32대가 시속 30km를 넘어 주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차량은 시속 50km에 가까운 속도로 빠르게 통과했다. 제한속도 위반 차량 중에는 특히 배달 오토바이가 많았다.
같은 날 송파구 마천로 일대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곳은 왕복 4차로 도로로 차도의 폭이 20m에 이르지만 교차로와 주차장 진입로 등이 많아 제한속도가 시속 30km 이하로 설정됐다. 노면 곳곳엔 운전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규정 속도 30km 표시가 있다.
하지만 취재팀이 속도를 측정한 결과 이곳에서도 50대 중 절반가량(24대)이 제한속도를 어기고 시속 30km를 넘어 주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토바이와 승용차는 물론이고 일부 시내버스도 규정 속도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근처를 지나던 보행자는 “과속 단속 카메라도 없고, 경찰도 단속을 안 하다 보니 운전자들도 거의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 5030 시행 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현장에선 정착이 더딘 상황이지만 경찰은 5030 정책이 교통사고 감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5030 시행 전(지난해 1월 1일∼4월 5일) 649명이었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올해 같은 기간 584명으로 줄었다. 보행 사망자 수도 같은 기간 228명에서 194명으로 감소했다.
시민들도 5030 정책의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한다는 반응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운전자 500명, 일반인 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일반인 71.6%, 운전자의 73.8%가 5030 정책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도심 일반도로의 속도를 50km 이하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는 일반인(92.2%)과 운전자(90.8%) 모두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운전자들은 속도 상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구간으로 보행자 접근이 어려운 고가도로(62.8%)와 신호등이 설치됐으나 8차로 이상 넓은 도로(57.2%) 등을 꼽았다.
서울시와 서울경찰청은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지난달 한남대교 등 한강 교량 17곳과 헌릉로 내곡 나들목∼위례터널 입구 등 3곳의 제한속도를 시속 60km까지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각 지역의 경찰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일반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60km까지 높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5일 보도자료를 내고 “도로 환경과 주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며 5030 정책을 일부 조정할 방침을 밝혔다. 인수위는 △보행자의 접근이 어렵거나 보행자 밀도가 낮아 사고 우려가 적은 구간 △녹지 등에 인접한 곳 중 과속 가능성이 낮은 구간 등에 대해 시속 60km까지로 제한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 “5030 정책 근간 흔드는 건 신중해야”
일부 교통 전문가들은 시행 1년여 만에 5030 정책이 일부 조정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선임연구원은 “5030 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교통사고 보행자 사고를 줄이는 것이고 실제 효과도 나타났다”면서 “보행자 안전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일부 조정하는 것은 괜찮겠지만,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것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5030 정책을 좀 더 시행한 후 개선 여부를 판단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며 “적어도 3년 정도 시행한 후 상황 분석을 통해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연구소의 조준한 수석연구원은 “아무리 차량 속도 제한을 강조하더라도 실질적인 도로 환경 개선이 동반되지 않으면 정책효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민원만 발생할 수 있다”며 “차로 폭을 줄이거나 속도저감시설을 확충하는 등의 인프라 개선과 단속 강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5030 전국 첫 운영’ 부산, 보행 교통사망 33.6% 줄어
시행 2년… 교통사고도 8.4% 감소… 도심 차량 주행속도 큰 변화 없어 “모두의 안전 위해 좋은 제도”… 서울과 달리 5030 당분간 유지될 듯
“몇 분 차이 안 나는데…. 안전한 게 훨씬 좋죠.”
부산 시민 김동철 씨(45)는 부산에서 2년째 시행 중인 ‘안전속도 5030’ 정책에 대해 “만족한다”며 25일 이렇게 말했다.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하는 김 씨는 “출근 시간이 5분 정도 늘긴 했다”면서도 “속도를 덜 내니 예전보다 운전이 여유로워졌다. 급하게 운전할 때 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에 모두의 안전을 위해 좋은 제도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안전속도 5030은 도심 일반도로 제한속도를 시속 60km 이하에서 50km 이하로, 주택가 이면도로와 어린이보호구역 등의 제한속도는 시속 30km 이하로 규제하는 정책으로 지난해 4월 17일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이보다 앞선 2017년 9월 부산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영도구를 대상으로 5030 정책을 시범 운영했고, 2020년 5월 12일부터 부산 전역에서 시행했다.
부산 5030 정책의 교통사고 예방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5030이 시행된 2020년 5월 12일부터 올해 4월 11일까지 700일간 부산에선 총 2만2260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700일간 집계된 사고(2만4314건)보다 2054건(8.4%) 감소한 것.
인명 피해도 감소세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부상자 수는 3만3673명에서 3만422명으로 9.7%, 보행 사망자 수는 125명에서 83명으로 33.6%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부산은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의 2019년 전국교통문화지수 실태조사에서 17개 시도 중 16위였지만 2020년 6위로 상승했다.
부산 도심 운행 차량의 평균 주행 속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부산시교통정보서비스센터가 5030 시행일을 전후해 중앙대로 통행 차량의 속도를 분석한 결과 평균 주행 속도는 시속 28.2km에서 27.8km로 시속 0.4km 정도만 감소했다. 직장인 서모 씨(48)는 “차량이 적은 낮 시간에는 가끔 답답할 때가 있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고 했다.
운전자 반발 등으로 도심 일부 도로의 제한속도를 다시 높일 예정인 서울과 달리 부산에선 당분간 5030 정책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산은 보행자 통행량이 적거나 물류 수송 차량이 많은 항만배후도로 등 49개 구간에 대해서는 이미 5030 시행 당시부터 제한속도를 시속 60∼80km 이하로 설정하고 있다. 김대원 부산경찰청 교통시설운영계장은 “교통사고 데이터와 도로 주변 환경 변화 등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민원이 자주 제기되는 도로 상황을 집중 검토해 제한속도 재조정이 필요한지를 관계기관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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