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아동인권… 어린이 행복에 한국의 미래 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일 03시 00분


[어린이날 100주년 아동 권리는 희망의 싹]〈하〉아이들의 ‘행복할 권리’ 지키자
韓 아동 삶의 질 OECD 최하위권… 지난해 1월 ‘징계권’ 삭제됐지만
아동학대 사망 건수는 증가 추세… 공부 스트레스 커… 휴식은 뒷전
정치권도 아동-청소년 권리 외면

세이브더칠드런이 2018년 ‘놀이터를 지켜라’ 사업으로 개선한 서울 도봉구 개나리어린이공원(왼쪽 사진). 어린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낙후된 기존 동네 놀이터를 재탄생시켰다. 오른쪽은 세이브더칠드런이 2015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 옹호 활동가 
캠프’에 참여한 어린이들(위 사진)과 2019년 이 캠프에 참여한 강원 속초시 영랑초 학생들이 속초시의원에게 전달한 제안서.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세이브더칠드런이 2018년 ‘놀이터를 지켜라’ 사업으로 개선한 서울 도봉구 개나리어린이공원(왼쪽 사진). 어린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낙후된 기존 동네 놀이터를 재탄생시켰다. 오른쪽은 세이브더칠드런이 2015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 옹호 활동가 캠프’에 참여한 어린이들(위 사진)과 2019년 이 캠프에 참여한 강원 속초시 영랑초 학생들이 속초시의원에게 전달한 제안서.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어린이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지만 여러 조사에서 ‘한국의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는 결과가 일관되게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시행하는 ‘아동종합실태조사’(2018년)에서 한국의 9∼17세 아동·청소년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57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였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2019년 35개국 만 10세 아동의 행복도를 비교한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에서도 한국(10점 만점에 8.41점)은 31위에 그쳤다. 한국 아동은 특히 △학습에 대한 만족도(25위) △안전한 환경에 대한 만족도(26위)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도(28위) △시간 사용에 대한 만족도(31위)가 낮았다. 한국 아동의 권리와 행복감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 어른들이 앞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 ‘학대 아동 보호-발달권’ 대책 시급
한국은 학대받는 아동에 대한 보호가 여전히 부족하다. 지난해 1월 민법에서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징계권’ 조항이 삭제됐지만 이는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복지부의 ‘2020년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는 3만905건이다. 같은 해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43명이다. 2018년 28명, 2019년 42명에서 더욱 증가했다.

물론 정부는 계속 아동학대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가해자 처벌 강화, 미신고 행위 제재 강화 등의 내용이 반복될 뿐 구체적인 예산과 인력 추가에 대한 중장기적 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훈육이나 사랑으로 포장된 아동 학대를 실질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법률 개정에 그치지 말고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비폭력적인 자녀 양육 방식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동의 발달권도 문제다.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에는 ‘모든 아동은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다’라고 돼 있지만 한국 아동들은 과도한 학습과 경쟁으로 놀이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9∼17세 아동·청소년 중 70.4%가 ‘학교와 학원, 과외 등 공부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평상시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혹은 많이 느낀다고 답한 아동·청소년은 16.0%였다. 그 원인(중복 응답)은 △숙제와 시험(64.0%) △성적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55.9%) 순이었다.

우리 사회는 아동 관련 입법 성과도 부족하다. 세이브더칠드런이 1월 발표한 아동 의정활동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21대 국회 첫 1년간 발의된 아동·청소년 관련 법안은 533건(아동 405건, 청소년 128건)으로 전체 발의 법안(9882건)의 5.4%에 불과했다. 국내 인구 중 아동 비율은 15%인데 국회에 닿은 아동 목소리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발의된 법안 가운데 가결된 건 4.9%(26건)였다. 이는 전체 발의 법안의 가결률(7.5%)에도 크게 못 미친다.

○ 아동의 권리 보장이 미래에 대한 투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끌 새 정부에서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신속한 사법처리 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당선인이 사법공약 1호로 아동·소년·가정문제의 형사사건까지 처리하는 통합가정법원 설치를 내걸어서다.

현재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가정법원이 아닌 형사법원에서 이뤄져야 해 처리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통합가정법원은 형사사건까지 도맡아 사건 처리가 빨라지고 피해자 보호 기능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 윤 당선인이 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스포츠 활동을 강화하기로 한 만큼 아동의 놀 권리 보장도 기대할 수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첫걸음으로 2014년부터 ‘놀이터를 지켜라’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아동들이 접근하기 쉽고 안전하며 아동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 놀이 공간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학교 운동장을 제외하고는 놀 공간을 찾기 힘든 농어촌 지역의 놀이터를 신축하거나 도심의 노후한 놀이터를 개선한다. 올해 4월 기준으로 93개 놀이터를 개선했고, 올해 100호가 개장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동 권리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유튜브 채널에서 시작한 강연 프로젝트 ‘오픈 마이크 포 칠드런’에 출연할 예정인 장동선 뇌과학자는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변해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동에게 투자하는 것”이라며 “아동이 꿈과 희망을 가지기 위해선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고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15년부터 아동들이 자기 눈높이에서 지역 문제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는 ‘어린이 옹호 활동가 캠프’를 진행해왔다. 이 캠프에서 아동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와 학교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의견을 내고, 지역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에게 전달한다. 2016년에는 서울시교육감과 전북도교육감, 부산 해운대구청장에게 잘 노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제안했다. 같은 해 서울시교육청은 아동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초등학교 1, 2학년에게 하루 20∼30분 자유놀이 시간을 주도록 권장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아동인권#어린이 행복#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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